세종시는 도시 중심이 녹지와 습지 형태로 비어있고, 외곽에 정부 청사와 주거단지, 상업시설들이 빙 둘러선 구조다. 프랑스 파리나 호주 캔버라 등 해외 수도 가운데 세종시처럼 중심부를 비운 도시는 없다. 서울의 세종대로나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처럼 수도를 대표하는 대로(大路)도 없다. 세종시의 가장 큰 도로인 한누리대로도 왕복 4차로에 불과하다. 세종시 도시 설계는 현대 도시의 특징인 ‘집중’보다는, ‘분산’을 택하는 실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도로율 전국 최고인데 차 막히는 ‘역설’

용 모양을 모티브로 한 정부세종청사 건물은 15개동이 최고 7층에 불과하다. 부처 간 교류를 촉진하겠다며 건물 사이 공중 다리를 놓았는데, 용 머리에 해당하는 총리실에서 용 꼬리에 해당하는 문화부까지 장장 3.5㎞에 달한다. 걸어서 50여분 걸리니 급한 업무로 다른 부처에 갈 때 차를 타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기획재정부에서 길 건너 불과 40m 거리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그 아파트 창가에 서면 공무원들 일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총리 집무실이 있는 국무조정실은 50m 앞에 대형 상가 건물이 있어 보안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친환경 도시’를 표방해 중·저층 주택과 고층 아파트를 복합설계하려 했으나, 2011년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부족하다며 대거 철수했다. 이후 고층 아파트 중심으로 수익성을 보장해주면서 ‘평등과 분산’ 이념을 지향했던 세종시도 여느 신도시처럼 고층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선 도시가 됐다. 충북 오송역에서 세종시 주도로인 한누리대로를 따라 도시로 접어들면 양쪽으로 25~30층 아파트에 둘러싸인다. 세종시의 장점인 구릉지대 전경을 가려버린다. 당초의 도시 설계는 뒤죽박죽이 됐다.

정부청사 타운 곳곳에는 임시 주차장이 총 4002면 들어서 있다. 청사 건물 주차장(3503면)이 모자라자 공사 예정지에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다. 도보·자전거 도시를 표방했지만 출퇴근길에 호수공원은 거의 만나볼 수 없다. 호수공원이 도시의 ‘중심’에 있어, ‘외곽’에 해당하는 주택가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가 밀집한 1·2생활권에서 세종시의 자랑거리인 국립세종도서관까지 걸어서 40분~1시간이 걸려, 아이들을 차로 태워다 줘야 한다.

한 도시 건축 전문가는 “올 초 세종시를 방문한 외국 전문가들이 ‘21세기에 이렇게밖에 못 만들었느냐’고 묻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 심취한 심사위원장이 선정한 ‘평등 도시案’

세종시 도시설계는 2005년 11월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 추진위원회가 국제 공모를 통해 공동 1위작으로 선정한 스페인 건축가 안드레스 페레아 오르테가(Ortega)의 ‘1000개의 도시’에서 나왔다.

정부는 당시 “사회적 특권과 차별이 없는 민주적 도시 구조”라며 “도시 기능이 분산된 위계 없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사람과 돈, 교통이 도심에 집중될 것을 우려해 아예 도심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국제 공모 심사를 주도한 인물은 공동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데이비드 하비(Harvey) 뉴욕시립대 교수였다. 하비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좌파 사상가로 마르크스에 대한 책을 다수 저술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하비 교수에 대해 “마르크스에 정통한 좌파 도시학자, 그가 (세종시 국제 공모) 공동심사위원장으로 되어 있었다. 아찔했다”고 한 칼럼에서 언급했다.

공동 1위로 5개 작품을 선정했는데, 이 중에는 도심에 주요 시설을 배치한 설계안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도시 건설 과정에서 다른 안들은 거의 무시됐다. 현재 기획재정부에서 국책 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에 가려면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금강을 건너 6㎞ 이상을 달려야 한다. 이는 ‘중앙행정단지’와 ‘대학·연구단지’를 떨어뜨려 놓은 도시 설계 때문이다. 서남쪽 주거단지와 북동쪽 의료·복지단지는 차로 20분이 걸린다. 정창무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세종시는 주거와 상업, 행정 등의 용도 구분을 엄격하게 한 나머지 활력과 시너지(통합)를 잃었다”며 “일종의 사회주의식 ‘계획경제’와 비슷하게 건설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효율과 집중 대신 평등과 분산을 택한 세종시의 문제점은 도로 교통망에서 특히 심각하게 드러났다. ‘평등’ 이념에 따라 중심도로를 12차로로 만드는 대신, 4차로 3곳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그 바람에 세종시의 도로율(개발 가능 면적 대비 도로 점유 면적 비율)은 24%로 전국 도시 가운데 최고 수준인데도 중심 도로는 교통 정체가 발생하고, 주변 도로는 통행량이 거의 없는 ‘불평등’이 심하다. 한 도시 설계 전문가는 “세종시는 ‘평등’이라는 이념에 집착한 나머지 주민 편익은 외면한 바람에 불편한 도시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외딴섬' 세종시 공무원 "사교육·전세난 대책 感이 안와요"]

['수도권 과밀' 해소 못하고… 충청권 인구만 빨아들이는 세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