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직후 낸 성명서에서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경제 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경제 공동체를 넘어 TPP를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의 핵심으로 바라보는 오바마 행정부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이 지역 경제를 자국 주도의 공동체 안에 묶어 날로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한다는 논리로 미국 내 TPP 반대 여론을 설득해 왔다.

그런 미국은 이번에도 핵심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다. 아베 일본 총리는 6일 TPP 타결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인권·법의 지배를 기본적 가치로 공유하는 나라들의 공정하고 열린 경제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이 이 시스템에 참여하면 일본의 안전 보장과 지역 안정은 물론 전략적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우회적이지만 TPP의 안보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아베 정부는 지난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법 개정을 통해 미국의 군사적 후방 기지로서 일본의 역할을 확실히 못 박았다.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거부와 함께 이번 TPP 합의는 일본이 안보 동맹에 이어 경제 동맹까지 미·일 관계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는 2년 전 TPP에 참여할 기회를 놓쳤다. 통상 전략의 중심축을 다자간 협정이 아닌 양자 간 협정(FTA)에 둔 데다가 일본에 대한 시장 개방을 우려하는 재계의 목소리와 농업 분야의 반발도 정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기적 이해득실보다 경제의 구조 개혁을 포함한 전체 국익(國益)과 동북아 안보 지형까지 고려하는 큰 전략은 없었다. 그 결과로 TPP라는 '수퍼 경제 동맹'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그러고선 뒤늦게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TPP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TPP에 한국이 참여해 우리 내부의 구조 개혁과 선진화의 계기로 삼기 위해선 먼저 산업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일본 공포증부터 극복해야 한다. 한국 산업계가 기술 대국인 일본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무섭다고 언제까지나 문을 닫아걸고 살 수는 없다. 한·미 FTA 협상 때도 "약자가 강자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필패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으나 실제 결과는 대미(對美) 무역 흑자의 확대였다.

일본과 미국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지금 이 자리까지 끌고 온 것은 도전하는 정신이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위정자들이 세계 GDP의 40%를 점하는 거대 자유무역협정을 먼 산 바라보듯이 했다는 것은 이 도전 정신이 흔들리고 사라지고 있다는 징후다. TPP엔 뒤늦게라도 들어갈 수 있지만 두려움이 도전 정신을 누르는 추세는 쉽게 바꿀 수 없다. 일본은 중국 주도의 무역협정(RCEP) 협상에도 참여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경제 영토 경쟁에서 일본에 일거에 역전당할 위기를 맞았다. 안보 전략의 모호성·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심각한 사태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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