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사는 주부 곽모(46)씨는 지난 주말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최근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사도'를 함께 보기 위해서다.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와 사도세자, 두 부자(父子)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택한 건 다름 아닌 자녀 교육 때문이다.

곽씨는 "영화에서 아버지 영조의 뜻을 어기고 공부를 게을리 한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채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라며 "요즘 사춘기라 그런지 부쩍 말을 안 듣는데, 이 영화가 스스로 '사도세자처럼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송강호·왼쪽)가 세자(유아인)가 짠 관을 찾아내 죄를 묻고 있다.


요즘 곽씨 같은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영화 '사도'가 특히 큰 인기다. 9월 16일 개봉 이후 추석 연휴 때도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며 강남 지역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선 '사도' 매진 사례가 이어졌다. 개봉 4주차가 지나면서 다른 20·30대 관객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아이 손을 잡은 40대 강남 엄마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에는 사도세자가 내관을 살해하는 장면 등이 등장하지만, 12세 관람가라 중학생이나 초등학교 고학년생 자녀와도 함께 보기에 부담이 없다.

강남 엄마들은 대개 사도세자를 반면교사 삼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아이에게 심어주려 이 영화를 택한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주 남편과 아들 둘까지 넷이서 평일 저녁 함께 '사도'를 봤다는 공무원 변모(47)씨는 "처음 생각대로 '엄마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사도세자처럼 된다'는 의식을 제대로 심어준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또 다른 40대 강남 주부 윤모씨는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가 될 것 같아 극장엘 갔는데, 나올 땐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윤씨는 "영조처럼 자식을 몰아붙이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공부를 시키거나 혼낼 때도 '과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모(48)씨도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둔다는 것 자체가 심하지 않느냐"면서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들과도 '사도세자가 불쌍하다'는 얘기만 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본 아이들도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중학생 A군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했다. "사도세자 뒤주를 보면서 '스터디룸'이 생각 났다"는 중학생도 있었다.

지난해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사방이 막힌 직육면체 부스 안에 책상과 의자를 붙인 가구 '스터디룸'이 큰 인기를 끌었다. 가로 1.1m, 세로 0.8m, 높이 2.1m로 중고생 한 명이 들어가면 딱 맞는 이 부스는 200만원이 넘는데도, 아이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강남에서 크게 유행했다. 일부 엄마들은 스터디룸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감시하려고 CC(폐쇄회로)TV나 잠금 장치, 소리 나는 종까지 달았고, 이를 두고 아이를 감금하는 '현대판 사도세자 뒤주'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중고생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스터디룸 가구에 아이가 들어가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