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눈병으로 큰 고생을 하셨고 심지어 시각장애인이라고 할 정도로 시력이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우선 천성이 학문을 좋아하여 세자로 있을 당시 매양 글을 읽되 반드시 백 번을 채우고, 사서(史書)를 읽을 때도 다시 백 번을 더 읽었던 탓이 큽니다. 게다가 오랜 독서 때문에 수시로 눈병을 앓았는데도 글 읽기를 멈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눈병이 점점 심해지자 아버지 태종은 내시를 시켜 불시에 동궁전으로 들어가 책을 모조리 거두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요행히 책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세종은 그 책을 천 번이나 더 읽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세종대왕의 눈병은 어느 정도였나?

세종대왕은 34세경부터 안질에 걸려 44세경에는 어두운 곳에서는 지팡이 없이는 걷기가 힘들 정도였으니 심각한 시각장애 상태로까지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록에 보면 세종 23년 2월에는 "내가 안질을 얻은 지 이제 10년이나 되었으므로 마음을 편히 하여 조섭(調攝)하고자 하니 매월의 대조회와 아일(衙日)의 조참(朝參)과 야인들의 숙배(肅拜)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없애게 할 것이며, 향과 축문도 친히 전하지 말게 하라", 4월에는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서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서는 걷기에 어려웠다. 온천에서 목욕한 뒤에도 효험을 보지 못하였더니, 어젯밤에 이르러서는 한방 약물학 책의 주석(註釋), 작은 글자를 보았는데도 볼 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의 눈병이 심해진 원인은?

세종대왕께서 젊은 나이에 눈이 그렇게 나빠진 것은 지나친 독서로 눈을 혹사시킨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어느 곳을 상하게 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구시상혈(久視傷血)'이라 하여 오래 눈으로 쳐다보면 혈을 상하게 되는데, 혈은 간이 주관하므로 혈이 상하면 간이 상하게 되고 간의 기가 눈으로 통하므로 간이 상하면 간에 연계된 풍기와 열이 올라 눈이 흐리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눈병은 기본적으로 거의 대부분 열이 생겨난 것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의욕적으로 국정을 펼치느라 과로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열을 올려서 눈병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또한 과식하거나 술을 비롯한 열성 음식을 즐겨 먹는 것도 마찬가지요.

그리고 눈은 신장의 정기가 공급되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는데, 신장의 정기는 우리 몸의 원기(元氣)로서 과로하거나 성생활을 과다하게 하거나, 오래도록 만성 질환을 앓는 경우에 허약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눈이 피로하고 침침해지게 되는데, 신장의 정기는 중년 이후에 감소되기 시작하므로 그래서 노안(老眼)이 나타나는 것이죠.

당뇨병 합병증으로 악화된 눈병 치료와 온천욕

세종대왕은 소갈, 즉 당뇨병에 걸렸기에 하루에 한 동이가 넘는 물을 마셨다고 합니다. 바로 그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눈병이 심해져서 말년까지 고생하셨는데, 치료를 위해 온천에 자주 다녔습니다. 충남 온양에 세종대왕께서 눈병을 치료했다는 우물이 있는데, '어의정(御醫井)', '어천(御泉)' 혹은 '어정수(御井水)'라고도 합니다.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온양행궁.

그리고 충북 청원의 ‘초수(椒水)’, 초정약수에도 행궁을 짓고 눈병 치료를 했습니다. 온천욕이 눈병 치료에 얼마나 직접적인 효과를 주는지는 확실치 않는데, 복잡한 정사를 잊고 요양하는 것이기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단기간이기에 효과는 일시적이었으므로 신하들이 장기간 치료를 건의했으나 민폐가 심하다는 이유로 보통 한 달 정도였고, 길어야 두 달을 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심각한 눈병에도 한글 창제하고 말년 건강 악화되다

세종대왕은 건강 문제로 인해 별세할 때까지 8년간은 세자인 문종에게 섭정을 맡겨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모든 결재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추구하던 주요 과제는 하나도 멈추지 않았고 실명 위기까지 가면서도 매일 새로 편찬한 책들을 하루에 수십권씩 직접 검토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세종 25년, 반포한 것이 28년으로 승하하기 4년 전이었으니 우리의 한글은 눈병과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 투병 상황에서 탄생한 위대한 업적이었죠. 눈병에 제일 나쁜 것이 술, 과도한 성생활 그리고 신경과로인데, 세종대왕께서는 눈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무리했던 것이죠.

게다가 그 무렵에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일곱째 아들인 평원대군, 그리고 왕비인 소헌왕후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기에 상심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더욱이 마지막 2년은 세자였던 문종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한때 중태에 빠지기도 했으므로 세종이 거꾸로 세자의 업무를 대신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명을 재촉했던 일이었죠.

☞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법

눈을 감고 눈동자를 회전시키거나 아침 일찍 양손을 비벼서 열이 나게 한 뒤에 눈 위에 대는 것이 좋습니다. 지압을 하는 것도 좋은데, 눈의 안쪽 즉 코쪽으로 끝부분에 있는 정명 경혈, 눈썹의 안쪽 끝부분에 있는 찬죽 경혈, 눈썹의 바깥쪽 끝부분에 있는 사죽공 경혈 등이 좋습니다.

눈을 밝게 하려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할까요? 눈은 간장과 함께 목화토금수의 오행(五行) 중에 ‘목’에 속하여 간장계통에 속하므로, 소, 돼지, 토끼의 간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은 ‘수’의 도움을 받는 ‘수생목(水生木)’이 되어야 하므로, ‘수’에 해당하는 신장의 음기가 부족하면 간장도 허약해져서 눈이 나쁘게 되지요. 이럴 때는 신장의 음기를 보충해 줘야 하는데, 산수유, 거북의 등껍질과 국화꽃 등이 좋습니다. 눈의 충혈과 피로를 풀어주는 약으로 결명자를 비롯하여 전복의 껍질인 석결명, 구기자 등이 좋습니다.

손상된 간기능을 살리고 시력을 보호해주는 구기자.

☞ 세종대왕의 운동

세종대왕께서는 늘 앉아서 책을 읽고 연구하며 집무를 보았기에 운동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격구'를 꽤나 즐겼습니다. 격구를 자주 하고 싶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그러지 못하기에 경신일(庚申日)만 되면 종친과 신하들과 함께 밤새도록 격구를 했다고 합니다. 날밤을 새워도 되는 경신수야(庚申守夜)를 핑계 삼았던 것이죠. 당시의 풍속에 60일에 한 번씩 1년이면 6번 돌아오는 경신일에는 왕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먹고 마시며 밤새워 놀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몸속에 '삼시충(三尸蟲)'이라는 벌레가 있는데 그것이 평소 인간의 과실을 기록해두고 있다가 경신일에 사람이 잠든 때를 틈타 하늘에 올라가 죄과를 상주해서 목숨을 감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 왕들이 그토록 격구를 즐겼던 까닭은

스트레스도 풀고 충분한 운동이 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왕들은 거의 궁궐 내에서 지내며 그나마 이동할 때는 '연'이라는 가마를 타고 다녔기에 운동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많이 걸어야 하는 격구는 하체의 혈액 순환에 좋은 운동이 되었던 겁니다. 또한 손과 팔을 써서 봉을 쳐야 하니 상체의 근력과 유연성 강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죠. 게다가 공을 치는 순간에 느끼는 쾌감이나 점수를 얻었을 때의 기분은 업무상 스트레스를 푸는데 안성맞춤이 되었던 것이죠.

수원 화성 연무대의 연무정에서 국궁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

그런데 왕의 운동이 또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활쏘기’입니다. 왕들은 궁궐이나 근교에서 자주 활을 쏘았고 세자의 교육 과정에도 활쏘기가 들어 있었는데, 세종대왕께서도 활쏘기를 장려하여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왕들이 활쏘기를 즐겼던 까닭은 지나치게 학문 연마에 치중하는 것에서 균형을 잡고자했던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