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경찰서는 실내사격장 총기 탈취범 홍모(28)씨에 대해 4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홍씨는 3일 오전 9시 20분쯤 부산 부산진구 실내사격장에 들어가 45구경 권총과 실탄 19발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4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홍씨를 제지하던 사격장 여주인 전모(46)씨는 홍씨가 휘두른 흉기에 배·허벅지 등을 찔려 중태다.

홍씨는 처음 경찰에선 "자살하려고 총을 훔쳤다"고 했다가 "우체국을 털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2년간 운영하던 미용실이 폐업하면서 3000만원 빚을 진 데다, 식당 창업 자금을 마련하려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해운대의 시장에서 흉기를 훔쳤고, 범행 이틀 전 실내사격장에 들러 내부 구조를 확인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총과 실탄을 훔친 뒤 옷·신발을 바꾸고, 걷거나 여러 차례 택시를 갈아타면서 추적을 따돌리려 했다. 사람을 살상(殺傷)할 수 있는 치명적 무기를 지닌 범죄자가 4시간 가까이 부산 시내를 활보하면서 시민들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뚫린 실내사격장

홍씨가 권총 탈취를 감행할 수 있었던 건 실내사격장이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격장에는 업주 외에 사격선수 출신이나 전직 경찰처럼 1년 이상 총기 관련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격장 관리자'를 두게 돼 있다. 문제의 사격장은 사격선수 출신인 여주인 전씨와 남자 직원 등 2명이 관리자로 등록돼 있다. 그런데 홍씨 범행 당시 남자 관리자는 아직 출근 전이었다.

3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의 실내 사격장에서 권총과 실탄 19발을 탈취한 홍모씨가 사격장 뒷문으로 황급히 빠져나오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 홍씨는 우체국을 털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권총이 사대(射臺)에 제대로 고정돼 있었다면 홍씨가 탈취할 생각을 품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사격장에선 누구나 간단하게 풀 수 있는 고리를 권총 방아쇠 부근에 걸어두는 식으로 허술하게 고정한 상태였다. 홍씨가 권총을 떼내 사격장을 벗어나는 데까지는 불과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실탄 사격을 하려면 업주에게 인적 사항을 알려주고 총기 대장에 적게 돼 있다. 그러나 홍씨가 주인 전씨에게 알려준 인적 사항은 모두 가짜였다. 사격장에서 신분증도 들여다보지 않고 총과 실탄을 내준 것이다. 경찰은 CCTV와 사격용 헤드셋 등에 남긴 지문(指紋)을 분석한 뒤에야 홍씨 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9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 바뀐 게 없었다

사격장에서 권총과 실탄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건이 전에도 있었다. 2006년엔 서울 양천구의 실내사격장에서 권총 1정과 실탄 20발을 훔친 20대가 이틀 뒤 은행을 털었다. 경찰은 은행 강도 사건이 벌어지고서야 사격장에서 실탄과 권총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 사격장 업주가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5년엔 부산의 실내사격장 직원이 38구경 권총과 실탄을 지닌 채 김해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려다 적발됐다.

이번에 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격장 자체 안전관리나 경찰의 관리 감독에 그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다. 실탄 사격을 할 수 있는 사격장은 전국에 14곳 있다. 부산에 가장 많고 서울·제주·경북 경주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 있다. 일본 관광객이 주 고객이지만 내국인도 출입에 제한은 없다.

경찰청은 "사격장 이용자가 인적 사항을 허위 기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기 대장 작성 시 신분증 확인을 의무화하고, 반드시 2명 이상 근무할 때만 사격장에 이용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전 준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