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되는 남자|로이 F. 바우마이스터 지음|서은국 신지은 이화령 옮김|시그마북스|520쪽|2만5000원

이 책은 위험하다. 남녀평등 시대에, 남성이 더 우월하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소위 '여성 혐오'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과 반발이 거센 시대가 아닌가. 플로리다 주립대 로이 바우마이스터(Baumeister) 교수의 '소모되는 남자'는 남녀 차이에 대한 새로운 사회진화적 해석이다. 인류의 기원부터 시작하는 성차(性差)의 진화생물학적 설계도이니만큼, 현재의 시선으로는 비난받을 소지도 다분해 보인다.

외교적 수사(修辭)와 다양한 통계를 걷어내면, 바우마이스터 교수 주장의 핵심은 이것이다. "남성이 세계를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동(反動)이라는 반박이 즉각 튀어나올 것이다. 하버드대 서머스 총장이 겪었던 10년 전 참사를 떠올려 보라.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고 발언했다가 결국 총장직을 물러나야 했다. 굳이 서머스가 아니더라도, 요즘 한국의 기업이나 학교에서 이런 성차별적 주장을 했다가는 봉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에 속할 만큼 영향력 있는 과학자가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진화생물학에 입각한 두 가지 현상과 분석이 있다. 하나는 남성이 극단적 존재라는 것. 다시 말해 최상의 우월한 존재도 남자에게 많지만, 최악의 열등한 존재도 남자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천재과학자·전쟁영웅·발명가·정치가 등 사회 꼭대기에도, 범죄자·마약중독자·사기꾼·정신지체자·알코올중독자 등 사회 밑바닥에도.

두 번째 분석은 남녀의 능력 차이는 거의 없지만,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동기에서 남녀의 격차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는 '자연'에서 우월한 존재는 여성이고, '문화'(혹은 사회)에서 우월한 존재는 남성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일부 호전적 페미니스트에게 반박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건 남성이 아니라고. 남성은 단지 다른 집단의 남성과 경쟁할 뿐이라고.

이제 첫 번째 현상부터 살펴보자. 바우마이스터는 자연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도박'을 더 많이 건다고 설명한다. 가령 돌연변이를 보자. 새로운 유전적 조합의 돌연변이에는 경우에 따라 우월한 특성도, 열등한 특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게 유리하다. 왜냐하면 암컷은 열등하건 우월하건 무조건 다음 세대로 그 유전적 조합을 대물림하지만, 남성은 다르다. 열등한 특성은 그 세대에서 끝나고 우월한 특성은 대를 이어 유전된다. 어떤 남성들에게는 우울한 이야기겠지만, 우두머리 수컷이 대부분의 암컷과 짝짓기를 벌이는 인류의 조상 시대를 떠올려보라. 1000명 넘는 자녀를 낳았다는 칭기즈칸이 있는가 하면, 비실비실하고 미적 자본도 빈약해서 평생 한 번의 짝짓기도 하지 못하는 열등한 수컷도 있는 것이다.

이제 "남성이 세계를 운영하는 게 당연하다"는 '위험한' 주장의 해석으로 넘어갈 차례다. 왜 남성은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반면, 여성은 그렇지 않은가. 가상의 페미니스트는 이를 남성이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이를 권력에 대한 남녀의 동기와 열망 차이로 본다. 남녀의 능력은 비슷하다. 하지만 남성은 경쟁하고 분투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경쟁자들을 물리쳐 온 반면, 여성은 일대일 관계에서의 친밀성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의 세례를 받은 저자는 이 역시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체의 제1목적으로 설명한다. 다시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은 일생동안 평균적으로 최소 한 명 이상 아이를 가지는 반면 많은 남성들은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씨앗을 하나라도 남기려면, 즉 암컷과 단 한 번이라도 섹스를 하려면 수컷은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안전을 우선하는 여성과 위험을 감수하는 남성의 후손이 된 까닭이다.

이렇게 요약하고 나면 책 제목을 '우월한 남자'쯤으로 달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어 제목은 '소모되는 남자'. 원제는 'Is There Anything Good About Men?'. 번역하면 '남성이어서 좋은 점이 있는가'. 부제는 'How Culture Flourish By Exploiting Men'.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 남성을 착취하면서 번영해왔는가'라는 뜻이다.

자연이 여성을 선호했던 것처럼, 문화는 남성을 선호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는 남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사회) 자체를 위한 것이었으며, 덧붙여 봉우리 정점에 있는 일부 남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의 남성 역시 소모품으로 혹사당해 왔다는 게 바우마이스터 교수의 최종 결론이다. 이 도전적 결론이 남녀가 서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와 박사과정생인 신지은 이화령씨가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