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가 일왕 히로히토를 폭살하려고 일본의 치안본부 경시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도쿄 교외 요요키 연병장에서 거행된 육군 관병식을 마치고 궁성으로 돌아가는 일왕 행렬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말이 다치고 궁내대신의 마차가 뒤집어졌으나 일왕 제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봉창 의사의 거사는 일제가 신격화한 일왕의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중국 국민일보는 "불행부중(不幸不中), 일왕을 저격했으나 불행히 맞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고, 각국 언론도 대서특필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의사의 의거는 이렇게 세계만방에 한국의 존재와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 겨우 이름만 유지하던 당시 임시정부를 되살렸다. 오늘날 이봉창 의사의 도쿄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사의 3대 의열 투쟁으로 꼽힌다.

그런데 정부는 1962년 윤봉길·안중근 의사에게는 건국훈장 1등급 대한민국장을, 이봉창 의사에게는 2등급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도쿄 의거의 의의나 효과를 도외시한 채 단순히 '성공, 실패'라는 잣대로 위업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도쿄 의거의 위업은 현재까지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30여 명의 공적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필자는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국가보훈처에 이 의사의 훈장 훈격 격상 청원을 했다. 당시 보훈처는 "훈격 재심사는 따로 계획이 설 때 추진할 사안으로, 특정 개인에 대해 필요에 따라 훈격을 조정할 수 없다"며 교과서적 회신을 한 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토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의사 추모 사업이 윤봉길·안중근 의사보다 활발하게 추진되지 않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봉창 의사가 주요 독립운동가로는 드물게 서울 태생으로, 요즘 지방자치단체의 대대적 '내 고향 위인' 홍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훈 당국의 의식 부족 탓도 크다. 이 의사의 기념물로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동상이 전부다.

10월 10일은 이봉창 의사가 일본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제83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봉창 의사의 훈장 훈격이 1등급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돼야 하고 이 의사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이 즉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