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5가에서 조그만 상점을 운영하는 최모(52)씨는 지난 4월 점심때 갑자기 가슴 통증과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를 목격한 행인이 심장 박동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의료진은 심근경색증을 의심하고, 심장 혈관인 관상동맥 촬영술을 시행했다. 예측은 맞았지만 환자는 급성 심근경색증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50대 초반의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우리나라 병원 밖 급성 심정지 발생 나이가 인종적으로 유사한 일본이나 대만보다 10년가량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가 일본·대만 연구진과 함께 2009~2012년 각국에서 발생한 병원 밖 급성 심정지를 조사해 최근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의 심정지 발생 평균 나이는 63.5세다. 일본의 71.7세에 비해 여덟 살, 대만의 70.5세에 비해서도 일곱 살 일찍 발생했다. 모든 게 빨리빨리인 한국인은 급성 심정지마저도 이른 나이에 발생하는 것이다.

서울대 의생명연구원 응급의료교실 노영선(예방의학) 교수가 서울과 일본 오사카시(市)에서 2006~2011년 발생한 병원 밖 급성 심정지를 조사해 최근 국제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한 논문 내용도 비슷했다. 해당 6년간 서울에서 발생한 급성 심정지 환자 나이 중앙값에 해당하는 연령은 67세이고, 오사카의 경우 76세였다. 서울 시민 심정지가 아홉 살 일찍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급성 심정지 후 심폐소생술을 받고 신경학적 장애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로 퇴원한 사람의 비율은 서울은 2.6%, 오사카는 4.6%였다. 심정지는 이른 나이에 오지만, 대처는 늦다는 얘기다. 병원 밖 급성 심정지는 암(癌)이나 척추질환과 달리 미리 위험 요인을 차단하거나 발생 당시 신속히 처치만 하면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한국인에게 조기 심정지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응급의학과 심장 전문의들은 한국 남성 50대(代)에 조기 발생하는 심장질환이 시한폭탄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급성 심정지의 최대 원인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생기는 급성 심근경색증이다. 대개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병 등 심근경색증 위험 요인이 누적된 60대 중반에 잘 생기는데, 한국 남성 심근경색증 평균 나이는 56세다(국립 심근경색증 등록 사업 데이터). 이는 일본 남성의 심근경색증 평균 나이 65~67세보다 10년 이른 나이다. 반면 한국 여성은 67세로 일본과 유사하다.

지난해 발생한 국내 전체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는 8만3000여명이다. 이 중 남성이 75%를 차지하는데, 50대가 1만8515명으로 가장 많았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 70대에 가장 많다. 급성 심정지를 유발할 수 있는 부정맥(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는 질환) 환자도 지난해 남자의 경우 50대가 1만1676명으로 가장 많다. 다른 나라의 경우 부정맥은 심장 기능이 노후화되고 심장병이 악화되는 60대 후반이나 70대에 잘 생기는데 한국 남성은 50대에 많다.

이처럼 한국 남성들은 50대에 심근경색증이라는 위험 요인이 일찍 생긴 상태에서 60대 초반에 여전히 사회 활동이 왕성하다 보니 병원 밖 급성 심정지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노영선 교수는 "급성 심정지 환자 10명 중 7명가량은 평소에 자신에게 심근경색증 등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병원으로 실려 온다"며 "만성질환 관리 부실, 경각심 부족으로 심장 검진 방치, 과도한 스트레스와 생존 경쟁 압박 사회 분위기 등이 이른 나이에 급성 심정지가 발생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이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온 43명에 대해 스트레스 심층 조사를 한 결과, 13명이 심정지 발생 60일 이내에 현저한 수입 감소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상도 응급의학과 교수는 "급성 심정지가 왜 한국인에게 비교적 젊은 연령에서 어떤 상황과 무슨 이유로 일어나는지 광범위한 역학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