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천 한동대 통일과평화연구소 소장

나흘 전 인도네시아 주재 북한 대사 이정률이 전격 경질됐다. 16~17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국립대에서 열린 북한 인권 국제 학술대회를 저지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북한과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인 우방으로 비동맹 운동 시절부터 특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1965년 4월 김일성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김일성화(花)를 증정했으며, 올해 한 단체는 김정은을 인도네시아 건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상의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대학과 인도네시아국립대와의 상호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등 인도네시아와의 우방 관계 복원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최고 학부인 인도네시아국립대의 교정에는 북한 인권을 논하는 큰 현수막이 걸렸다.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표방한 인권의 보편성이 북한과 인도네시아의 전통 우방 외교 틀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인도네시아국립대 교책연구소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인도네시아 시민단체 엘삼(ELSAM)과 공동 주최로 '아세안과 북한 인권 개선'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인도네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정치참사관과 꽃제비 출신 탈북자가 같은 행사장 안에서 공개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 대사관 정치참사관은 북한의 12년 무상 교육과 의료제도 등을 거론하며 국제사회가 확실한 근거 없이 정치 공세를 취한다며 인권(人權)보다는 국권(國權)이 먼저라고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와 정반대로 북한 청진시 출신의 한 탈북 청년은 네 살 때 어머님을, 열두 살 때 아버님을 잃게 되어 꽃제비 생활을 하게 되었고, 중국에서 먹을 것을 구해온 죄로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겨우 살아나온 여정을 담담히 얘기하였다. 특히 그가 대한민국에서 현재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는 발언으로 마무리했을 때 큰 공감을 이끌어냈고 인도네시아 교수들과 학생들은 따뜻한 박수로 화답했다.

북한 인권에 대하여 가치 중립적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이제 변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결국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넷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서 아세안 사무국과 아세안 인권위원회가 있는 동남아시아의 중요한 거점 국가이다. 이제 북한 인권 실상이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좀 더 알려진다면 인도네시아 또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함으로써 결국 아세안 국가 모두가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날이 멀지 않게 될 것이다.

한 인도네시아 청중이 탈북 청년에게 질문했다. "언제 통일이 될 것 같은가?" 청년은 대답했다. "아마 10년 안에 될 것 같다." "왜 10년인가?"라는 질문에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10년이면 내가 전문가로서 준비되어 내 고향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탈북 청년은 북한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북한 인권의 보편성은 이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류사적 교훈으로 잔잔히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우리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면 역사의 새 길이 날 것이다. 통일은 어느덧 우리 곁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