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찾아 나서야 하는 것도,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그게 희망입니다."

1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 800석의 객석을 가득 채운 학생들이 숨죽여 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단에 선 사람은 영국의 오디션 스타 가수 폴 포츠(Paul Potts·45).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세계 13개국 앨범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한 세계적 가수로 변신한 그에게 한국의 청춘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했나요?"

17일 오후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토크 콘서트를 가진 폴 포츠(가운데)와 학생들이 활짝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폴 포츠는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학생회 '함사드림'(이하 학생회)의 요청으로 성균관대를 찾았다. 넉 달에 걸친 학생들의 간절한 구애(求愛)가 바쁜 그를 성균관대로 이끌었다. 폴 포츠는 내년 공연 일정이 이미 꽉 차 있다.

폴을 직접 만나려는 성균관대 학생들의 시도는 지난 5월 시작됐다. 취업난에 지친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강연을 계획하던 학생회는 초청 연사(演士)로 폴 포츠를 떠올렸다. 보잘것없는 외모, 가난한 집안 형편, 악성 종양과 교통사고를 겪은 폴은 이 시대 한국의 청춘보다 나을 게 없었다. 무엇보다 폴은 기적처럼 난관을 뚫고 간절히 원하던 가수의 꿈을 이뤘다. 학생들은 "그런 폴에게 '희망'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폴 포츠는 이미 스타였다. 그의 1회 공연료는 한 해 학생회 예산을 훌쩍 넘었고, 일정도 대학 학생회 초청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학생회의 폴 포츠 초청 계획을 들은 학생들은 "폴 포츠가 무슨 옆집 아저씨인 줄 아느냐"는 반응이었다. '좌절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하려고 기획한 행사는 시작부터 좌절의 문앞에 섰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야?" 조성해(26) 학생회장은 지난 5월 폴 포츠의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어 그의 내한 일정을 알아봤다. 폴은 이틀 뒤인 5월 22일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학생들은 아침 8시 수십 번 고쳐 쓴 손 편지와 플래카드를 들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손 편지 내용은 이랬다. "세계는 한국의 성장을 주목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학업·취업 스트레스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수많은 20대가 있다. 우리는 당신을 부르기 위한 비용을 지불할 여건이 안 되지만 당신이 그랬듯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출국장을 빠져나오던 폴은 한복 차림으로 그를 기다리던 학생들에게서 편지를 건네 받고 이들을 안아줬다.

그 뒤로 아무 연락 없이 두 달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폴 포츠는 에이전시를 통해 '학생들을 만나러 가겠다. 강연료는 물론 무대 장비 대여료와 오케스트라 인건비를 모두 부담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신정은(21) 부학생회장은 "그 전화를 받는데, 믿어지지가 않아 손이 덜덜 떨렸다"고 했다. 폴 포츠는 "학생들이 건넨 편지를 읽어봤더니 '이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폴 포츠는 스페인 가곡 '그라나다'와 영어로 번역한 가요 '보고 싶다'를 들려줬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그는 "가족이나 친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본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강연 말미 폴 포츠는 서툰 한국어로 '안창호'란 이름을 꺼냈다.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도산공원을 산책하다 안창호 선생의 어록을 읽었습니다.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여러분은 한국의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