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 단백질과 염분을 동시에 제공하는 젓갈은 밥상의 '주연급 조연'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젓갈은 왕족이나 양반들이 먹던 귀한 식재료였다. 삼국사기(1145년) 신문왕 8년(683년) 기록에는 왕가의 납폐 품목에 해(醢)가 나온다. 폐백음식에 포함될 정도로 젓갈이 귀한 대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새우젓.

젓갈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나온 건 경주 안압지다. 안압지에는 태자(太子)의 주방인 포전(庖典)이 있었다. 이곳에서 7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제작된 목간(木簡)이 발굴됐고, 여기에 젓갈의 이두인 '助史(젓)'은 물론이고 젓갈을 의미하는 한자어인 '해(醢)' '자(鮓)' '갑(醘)'이 나온다. 지금은 해산물을 이용한 젓갈이 주류를 이루지만 당시에는 사슴, 토끼, 꿩 등 뭍짐승과 날짐승도 많이 사용했다.

젓갈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김치에 들어가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김치는 19세기 이후 고춧가루와 젓갈이 같이 사용되면서 한민족 고유의 음식이 되었다. 조선 중기 문신 김정국(1485~1541)의 사재집(思齋集)에 '박세평이 이자에게 자하젓(새우젓)과 오이로 섞박지(交沈菹)를 만들어 보내며 말하기를 "이 김치는 심히 자미가 있으니 공이 반드시 감동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구절은 김치에 젓갈을 사용한 첫 기록이다. 지금도 젓갈에 많이 사용되는 새우가 조선 중기부터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절(冬節·겨울)을 앞두고 황해도 연안으로부터 마포강으로 새우젓을 실은 젓갈배가 수없이 들어오고 있다. 최근 들어오는 것은 매일 평균 4000여 독가량'(1947년 9월 10일자 경향신문)이란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새우젓은 서울 사람들의 김장에 가장 중요한 젓갈이었다.

서울의 부자들은 가을이면 물새우젓과 게젓, 가자미젓, 비웃젓, 소라젓을 먹었다(1957년 11월 14일자 경향신문). 젓갈 한 점에 밥 한 숟가락이면 여름내 잃었던 입맛을 되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