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우 윤은혜씨가 중국 TV 프로그램에서 국내 브랜드인 '아르케' 윤춘호 디자이너의 의상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국내 패션계에 횡행해온 표절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윤씨가 디자인 표절을 전면 부인한 데다 디자이너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반박해 감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올해 초 송승렬 디자이너의 번개티 디자인도 모 대형 오픈마켓에서 그대로 표절했다는 취지의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윤씨 관련 논란과 그녀의 초기 대응은 패션디자이너들이 표절 때문에 느껴온 좌절과 분노의 기름에 불을 댕긴 격이 됐다.

수많은 국내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대책 없는 표절로 경제적·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 왔다. 대부분 패션디자이너들은 튼튼한 브랜드 파워 없이 영세 규모의 1인 기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동대문시장의 파행적 베끼기 관행과 대기업의 표절 횡포에 속수무책이다. 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소요되는 경제적·시간적 비용을 영세한 디자이너들이 견딜 수 없음은 자명하다. 내년 시즌에 대비해 영혼을 다해 선보인 디자인이 정식 제품으로 출시되기 전 이미 복제 상품으로 활개치는 상황은 참담함을 넘어설 지경이다. 패션 대기업에서 디자이너 제품을 사전 허락 없이 공공연하게 표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패션을 포함해 지식재산권은 표절을 공식적으로 판정하는 기관이 없어 표절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원이 내린다. 법원에서 패션디자인을 저작권법으로 보호한 사례는 히딩크 넥타이 사건이나 개량 한복 사건 등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패션디자인 표절은 부정경쟁방지법에 호소하는 상황이지만, 이 법은 패션디자인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어서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더구나 법원에 소 제기 이후 1년 이상 시간이 소요돼, 패션처럼 트렌드에 민감하고 상품 주기가 빠른 아이템의 경우 소 제기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질적인 패션디자인 표절 문제 해결을 위해 대체적 분쟁 해결 방식이 필요하다. 선진국처럼 법원이 아닌 중립성·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들로 이뤄진 제3의 독립 기구를 설립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1000억원대에 이르는 복제품 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패션계에 만연한 '복제 불감증'이 공익 캠페인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돼야 패션 산업도 살고 콘텐츠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이루려는 창조경제 이념에도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