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합의에서 임금피크제 도입과 일반 해고 요건 완화에 동의한 것은 기득권(旣得權)을 포기하는 결단이었다. 공공 기관 종사자들은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성과급을 주지 않겠다'고 완력(腕力)으로 밀어붙여 임금피크제를 확산시켜 가고 있다. 일반 기업과 공기업들은 스스로이건 떠밀려서건 임금피크제와 저(低)성과자 해고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공무원은 왜 예외로 놔둬야 하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국노총도 지난 2일 낸 성명에서 "공무원이 공공 기관 종사자보다 훨씬 많으니 공무원에게 임금피크제롤 도입하면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공무원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에 솔선하라"고 주장했다. 공공 기관 인력은 23만명, 공무원은 100만명에 달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4일 국정감사에서 "왜 정부 부처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느냐"는 여당 의원 질의에 "공무원 임금은 이미 임금피크제 요소가 있다"고 대답했다. 공무원은 최고 호봉(일반직 4급 경우 28호봉)에 도달하면 임금이 자동으로 동결된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공무원은 원래부터 정년이 60세여서 새로 정년이 연장된 것이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현재 공공 기관과 일반 기업에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는 보통 정년 2~4년쯤 전부터 매년 10% 또는 20%씩 임금을 깎아가는 방식이다. 만 59세가 되면 원래 받던 임금의 60% 또는 70% 정도를 받는다. 공무원은 50대 후반 임금이 동결되는 호봉상한제의 적용을 받는다 해도 호봉 상승만 이뤄지지 않을 뿐 공무원 전체 임금 상승에 따른 인상은 매년 이뤄지게 된다. 내년에도 공무원 임금은 3% 정도 오를 전망이다. 매년 10~20% 깎아가는 기업·공공 기관의 임금피크제와 매년 3% 오르는 고참 공무원의 임금을 어떻게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공무원은 원래 정년이 60세라서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본 것이 아니라는 말도 황당하다. 직장인들도 2013년 입법으로 내년부터 정년 연장을 보장받는다. 엄밀히 따지면 직장인들이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맞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노사정 합의를 통해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공무원에게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논리가 너무 궁색한 것이다.

저(低)성과자 해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은 범죄나 비리 등의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신분 보장을 받는다. 이건 해고제를 도입할 경우 정치권력이 공무원들을 줄 세우는 도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요즘 세상에 권력자들이 공무원들에게 '안 자를 테니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노동 개혁은 15일 노사정의 최종 합의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야당부터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노총도 '노동 개악(改惡)'이라며 지도부가 삭발하면서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야당과 기득권 노조의 저항을 돌파하려면 노동 개혁에 대한 확고한 국민 지지를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솔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신입 공무원들만 쥐어짜고 기존 공무원들 기득권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번 노동 개혁도 공무원들이 공공 기관과 일반 기업 종사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자기들 특권(特權)은 그대로 움켜쥐고 있어서는 개혁다운 개혁을 이뤄내기 어렵다. 정부는 공무원 임금피크제 도입의 구체 일정을 제시하고,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은 솎아내는 제도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사설] 北 핵·미사일 또 도발해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길 가려 하나
[사설] 이혼 後 '자립 능력 부족한 배우자' 보호策 나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