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은밀하게 덮쳐 온다. 낯선 전염병일 수도, 안전사고일 수도, 조직 리더의 말 한마디나 직원의 행동 하나일 수도 있다. 위기가 터지면 루머는 정보와 뒤섞여 온라인을 타고 급속히 번지는 세상이다. 사건·사고 발생 시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이미지 위기, 신뢰도(度) 위기로 번지면서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은 치명타를 입는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꼽는 위기관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공감하며 사과하라

2010년 4월 20일 오후 9시 50분 미국 루이지애나 앞바다에서 거대 석유사 BP의 심해 석유 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호(號)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1500m 아래 바닷속에서 하루 2만배럴 넘는 원유가 새어 나왔다. 2009년 아일랜드 GDP보다 많은 2461억달러(약 250조원) 매출을 올렸던 '해가 지지 않는 제국' BP는 대혼란에 빠졌다. 더 큰 위기는 리더의 '입'에서 폭발했다. "이 난리가 끝나길 나보다 더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요. 나도 내 인생을 되찾고 싶어요." 5월 30일 BP의 CEO 토니 헤이워드는 이 한마디로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유출량은 얼마 안 된다" "환경 피해도 별로 없다"며 연이은 거짓말로 사태를 악화시키던 그는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시사주간 타임)으로 전락했다. BP 주가는 사고 50일 만에 52% 폭락했고, 170억달러의 분기 손실을 냈으며, CEO는 사고 100일을 못 넘겨 물러났다. BP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신뢰를 잃었으며 ▲피해자를 존중하지 않았다. 위기관리의 A부터 Z까지 망각한 초대형 실패였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에서도 같은 교훈이 확인된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는 병원 간부의 실언으로 위기를 키웠다.

스킨십으로 소통하라

말레이시아 저가 항공사 에어아시아 여객기의 해상 추락 사고 대응은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위기를 돌파한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201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싱가포르로 가던 에어아시아 여객기가 자바해(海)에 추락했다. 탑승자 162명이 숨졌다. 에어아시아 CEO 토니 페르난데스는 즉각 수색과 사고 원인 규명을 시작했다. 그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했다. 사업 파트너와 직원들에게는 '함께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줬다. 유가족에게는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스킨십 소통'을 했다. 그 결과 에어아시아는 사고를 수습하며 쌓인 국제적 신뢰를 바탕으로 일본과 인도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특히 위기 극복 의지와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 트위터를 적극 활용했다. 위기를 초스피드로 확산시키는 SNS를 오히려 위기를 급속히 잠재우는 데 이용한 것이다.

반면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은 정반대였다. 사과도 소통도 없이 법정에서 주먹을 휘둘러 보이는 해프닝까지 벌였던 김 회장은 1심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투명하게 공개하라

2010년 6월, 중국 공안 당국이 중국 충칭 힐튼호텔을 급습, "3시간 안에 호텔을 폐쇄하라"고 명령했다. 호텔 라운지 바에서 성매매 혐의로 100여명이 연행되는 사진이 중국 미디어를 뒤덮었다. 손님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50여곳의 중국 내 힐튼 사업 파트너들은 동요했다. PR컨설팅사 케첨의 존 베일리 싱가포르 지사장이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그는 "작은 실수만 해도 중국 시장 전체의 신뢰를 잃고 글로벌 평판까지 망가질 위기였다"고 회고했다. 힐튼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모두에게 진실을 알린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모든 직원, 파트너, 영업 담당, 여행사, 특별 회원들에게 "이 사건은 바(bar) 소유주의 개인 비리이며, 힐튼의 윤리 기준은 여전히 세계 최고"라며 편지와 전화로 설득했다. 영구 폐쇄 위기였던 충칭 힐튼은 2주 만에 재개장했다. 힐튼은 중국 내 100여개 지역으로 호텔 사업을 확장했고, 2013년 12월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우리에겐 이와 정반대의 사례가 있었다. '형제의 난' 당시 롯데그룹은 오너 가족 내부의 비밀스러운 행보로 수많은 억측을 낳았고, 소비자 주도의 불매운동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21일 제1회 조선 이슈 포럼에서는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생생한 경험과 현장 사례 중심으로 위기 관리와 소통 노하우를 공개한다.

"CEO 입장에서 묻지 말고, 피해자·고객·직원 입장서 물어야"

-로고스컨설팅 가르시아 대표
위기 당하면 질문부터 바꿔라… 1인칭 아닌 3인칭 시점으로

"리더가 독단과 아집을 부리면 (사고·사건 등으로 인한 기업·공공기관의) 위기는 악화됩니다. 그걸 'CEO병(病)'이라고 부릅니다. 슬픈 일이지만, 대부분 CEO들은 한 번 곤욕을 치른 뒤에야 다음 위기에 제대로 대응합니다."

오는 21일 제1회 조선이슈포럼에서 강연하는 로고스컨설팅그룹의 헬리오 프레드 가르시아 대표는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위기를 겪어 보지 않은 리더는 자신의 '병'이 뭔지 모른다"고 했다.

가르시아 대표는 위기관리 컨설팅 분야에서 36년간 일하며 금융·국방·에너지·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정부·기관·비영리단체의 자문에 응해 왔다. 다국적 기업 CEO 350여명 등 고위직 인사 3000여명의 위기 대응 전략 '과외 교사' 역할도 했다. 이번 포럼에서 그는 미국식 위기관리 DNA에 새겨진 힘을 분석하고 그 핵심 비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그는 "위기가 닥치면 질문부터 바뀌어야 한다"면서 "1인칭을 버리고 3인칭으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개 위기에 처한 조직과 리더는 '우리가 뭘 해야 하지?' '왜 나·우리가 이런 꼴을 당한 거지?' 등에 대해 자문합니다. 이런 질문은 다 같이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조직과 리더에게 그들은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기대하고 있는가?'라고 3인칭으로 물어야 합니다."

3인칭의 '그들'은 피해자, 고객, 직원, 사업 파트너, 주주, 정부, 언론, 일반 대중 등 이해 당사자들이다. 가르시아 대표는 위기 극복의 목표는 '그들'의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며, '그들'의 입장에서 질문할 때 더 빠르고 더 현명하게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확하게 사고하고 고통을 감수할 것 ▲현명하게 행동하고 소통할 것 등을 '위기관리 원칙'으로 제시했다.

가르시아 대표는 특히 "조직과 리더는 위기로 인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덜어주는 말과 행동을 가장 우선시하고, 피부에 닿게 실행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효과적인 위기 대응의 첫 관문은 적절한 시점에 '공감(共感)'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리더가 얼마나 배려하고 공감하느냐를 보면, 위기로 인해 조직이 겪게 될 신뢰·명성·재정 등의 손실이 얼마나 될지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BP 멕시코만 석유 시추시설 폭발 사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등 위기 대응에 실패한 최근 대형 사건 사고들은 조직과 리더가 '공감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공통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전문가들, 기업·정부기관 위한 위기관리 비법 소개

제1회 조선이슈포럼은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국민안전처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후원하는 '제1회 조선이슈포럼'은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들에 대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 과정을 점검하고 최적의 위기관리 해법을 찾아보는 자리다.

'메르스 이후: 위기 극복, 커뮤니케이션에 답이 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오는 2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위기관리·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이 생생한 실증 사례를 통해 우리 정부와 기업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만한 위기 관리 비법을 소개할 예정이다.

포럼은 모두 4개 세션으로 진행된다. 오전에는 '미국의 위기 극복 DNA'와 '진화하는 유럽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세션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정부·공공기관 위기관리 비법을 공개한다. 오후에 열리는 '기업을 살리는 커뮤니케이션' '대중을 살리는 평판 커뮤니케이션' 세션에선 기업들이 위기 대응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어 열리는 패널 토론에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비법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발표 자료와 중식이 제공되며, 등록 신청은 홈페이지(www.chosunforum.com)에서 받는다. 문의 (02)375-4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