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청사마다 걸려 있던 빛바랜 태극기가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 태극기와 자전거 유니폼에 새겨진 태극기를 번갈아 보니 가슴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취를 따라 3000㎞ ‘광복의 길’ ‘항일(抗日)의 길’을 달려온 20명의 건각(健脚)들이 4일 모든 일정을 마친 뒤 한자리에 모여 33일간의 감회를 얘기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청년들의 눈빛은 진지했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임정 청사의 방공호 기억에 생생"

대원들은 "대장정을 통해 독립투사의 고난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 의미가 컸다"고 했다. 이준영 대원은 "충칭(重慶)의 험준한 산길을 넘으면서 과거 임시정부 선열들의 행렬이 눈에 그려졌다"며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걷고 또 걸었을 선열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이진수·정재원 대원은 "창사(長沙) 임시정부기념관에 있던 지하 방공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 좁고 어두운 곳에서 비행기 폭격을 견디며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임정 요인들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신은비 대원은 자싱(嘉興)에 있던 김구 피난처에 대해 얘기했다. "그곳 김구 선생의 침대에 누워봤어요. 그의 시선을 똑같이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좁고 불편한 그 침대에서 매일 밤 어떤 생각으로 지새우셨을까요."

"나라가 있다는 게 축복"

재중동포 김혁 대원에게 이번 대장정은 역사 공부의 시간이었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자란 탓에 학교에서 임시정부에 대해 깊이 공부하지 못했어요. 항저우(杭州) 임정 청사에 전시된 '임시정부 공보' 등 옛 문서를 이번에 유심히 봤습니다. 27년간이나 유지된 임시정부는 세계사적으로 드물다고 들었어요. 애국심으로 투쟁의 길에 뛰어든 사람들의 의지에 당시 중국인들도 감명을 받았을 겁니다."

한중 청년 자전거 대장정 31일간의 순간들 그래픽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주희 대원은 "입시 위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임시정부 피난 경로를 제대로 안 봤었는데, 이번에 생생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며 "윤봉길 의사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기 전 젖먹이 아이들에게 남긴 유언 시(詩)를 읽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중국인 시펑페이 대원은 "상가오(上高)에서 만난 99세의 중·일전쟁 참전 노병이 눈물을 흘리며 전쟁의 참혹함을 설명해주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나라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 깨닫게 됐다"고 했다.

길 위에서 만난 한·중의 우정

대원들은 33일간 함께 달리며 한·중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왕루 대원은 "임정 기념관마다 안내문에 '한중우호' 네 글자가 꼭 붙어 있었다"며 "그걸 볼 때마다 우리가 한·중 우호의 전도사이자 민간사절단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주옌 대원은 "과거 중국인 추푸청(�輔成)은 가족의 신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숨을 곳을 마련해줬다고 한다"며 "추푸청과 김구의 후손들이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다는데, 우리 대원들도 이런 우정을 이어가자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시골길에서도 중국인들의 인정을 느꼈다고 했다. 김민지 대원은 “자전거가 지날 때마다 중국인들이 손을 흔들어줬고, 시골 마을에선 ‘대단하다’며 수박과 물을 갖다줬다”며 “그동안 중국인은 그냥 외국인이라고 여겼는데 이젠 특별한 이웃 같다”고 했다. 루헝 대원은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말에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인연’이라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중국·한국의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게 젊은 세대의 의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