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한·중 정상이 만나기만 한 거라면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한국이 과거와 다른 외교를 시작했다."

한국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사진)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과거의 한국은 한·미·일 외교가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상황에 따라 한·중·러, 한·중·일, 한·미·일을 오가고 있다"면서 "한국이 '미들파워 외교'를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호주·캐나다처럼, 수퍼파워(초강대국)는 아니지만 상당한 힘을 가진 나라를 미들파워(중급 국가)라고 한다. 이들은 당대의 수퍼파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되, 경우에 따라 복수의 수퍼파워와 파트너를 바꿔가며 협조·경쟁한다. 수퍼파워의 입김에 일방적으로 좌우되지 않을 국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 방중의 의미는?

"열병식에 참석한 정상 중에 푸틴·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눈에 띈다. 두 사람이 시진핑 주석과 함께 있는 이미지가 전 세계에 중계됐다. 일본 대중은 무의식중에 '저 세 사람이 한 그룹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외교 그 자체만 보면, 기존의 한국 외교는 한·미·일이 기본이었다. 이젠 다르다. 이번엔 한·중·러가 북한 문제, 경협, 유라시아 구상을 논의했다. 10월엔 한·미 정상이 안보 외교를 한다. 이후 한·중·일 정상이 동북아 이슈를 논의한다. 한국이 상황에 따라 차원이 다른 세 가지 외교를 병행하게 됐다."

―위험 요소는?

"그만큼 더 대미·대일 외교를 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방중을 미·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으로부터 '한·중·일 정상회담을 열겠다'는 약속을 안 받았다면, 일본에서 비판이 나왔을 것이다. 앞으로 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면,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사드 배치를 포함해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한·미·일 관계엔 어떤 영향이 있나.

"한국의 미군 기지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견제한다. 한·미 동맹은 군사 동맹이다. 한·미 동맹이 굳건하지 않으면 일본도 곤란하다. 지금 중국 해양기지가 계속 남방으로 진출한다. 왜 남방일까? 북쪽은 평택 미군기지에, 동쪽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막히니까 남쪽으로 가는 거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동맹은 '핵심축', 미·일 동맹은 '주춧돌'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소용이 없다."

―향후 한·일 관계는?

"어느 나라건 이웃이 제일 중요하다. 미국도 멕시코, 캐나다랑 싸움 못 한다. 한국은 옛날과 달리 큰 나라가 됐다. 한·일 관계가 잘되면, 둘이 합쳐 더 강한 미들파워 외교를 할 수 있다. 한·일은 중·미 사이에 있고, 민주주의·무역국가·공업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문제만 빼면 이해관계가 맞는다. 일본도 한국과 협력할 생각을 못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한·일이 함께 미들파워 외교를 펴는 게 이익이란 걸 피차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