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와 다른 국제 경제벨트와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연쇄 회담 뒤 내놓은 한중정상회담 발표문에는 “양측은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에 주목하고,각자의 구상을 실행하는데 상호 연계 가능성을 모색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왼쪽)은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일대일로를 연계하기로 합의했다고 신화통신 등이 보도했다.출처:신화통신

이 보다 앞서 3개월 전인 지난 5월엔 러시아를 방문한 시 주석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일대일로를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연계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일대일로에 EEU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연계시킨 건 일대일로가 중국의 패권추구가 아닌 포용적성장을 위한 포석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도움을 줄 전망이다.후안강 칭화대 국정연구중심 주임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천하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일대일로는 중국이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게 아니다. 다른 경제벨트와의 협력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3개 경제벨트 가운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구체성이 가장 결여돼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후안강 주임은 “좋은 아이디어와 집행계획 그리고 자금 등 3가지 요소를 갖춘 게 일대일로가 탄력있게 추진될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소요될 자금 조달 관련해선 동북아개발은행 정도가 논의될뿐 구체적인 정책예산 등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게 없다. 동북아개발은행도 이번 한중정상회담에서 리커창 총리가 “동북아개발은행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한 걸 제외하면 구체적인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중국이 주도하는 초기 자본금 1000억달러 규모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올해말 출범할 예정이다. 당초 중국 정부가 예상한 30여개국을 웃도는 한국 러시아 등 57개국이 창립멤버로 참여하기로 했다. 앞서 연초엔 400억달러 규모의 중국의 실크로드기금도 올해초 가동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내놓은 때는 2013년 10월이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이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실크로드경제벨트, 10월 인도네시아를 찾았을 때 21세기 해상실크로드를 각각 처음 제안하면서 등장했다. 지난 4월 일대일로 청사진을 공개한 중국 정부는 지방정부에도 이달까지 관련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지만 추진 속도면에서 한국이 크게 처진 것이다.

특히 한국은 200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ASEM)에서 ‘철의 실크로드’를 제안할 만큼 일찌감치 중앙아시아 포용 전략을 펴왔다. 남북한 종단 철도를 깔고 이어 유럽까지 잇는 철도를 통해 동반 부흥의 길을 열자는 구상에 아셈도 호응했었다.

그러나 후일 정권 교체 이후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한국판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물 밑으로 내려갔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국판 실크로드를 되살릴 기틀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중국의 실크로드 구상에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EEU는 푸틴 대통령이 엣소련 국가들과 상품 자본 인력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며 2011년부터 설립작업을 주도해 올해 1월 출범시켰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키스스탄 5개국이 회원국이다.

회원국수는 아직 작지면 EU가 40여년에 걸쳐서 설립된 것에 비해 EEU는 러시아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지 4년여만에 출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EU 구상을 가장 먼저 제안한 인물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4월 말 5연임에 성공한 뒤 연 기자회견에서 터키 등 40여개국이 EEU 가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중앙아시아에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당초 일대일로와 EEU는 중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벌이는 패권경쟁을 보여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대일로의 길목이라고 할 수 있는 키르기스스탄이 2013년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잇는 철도 건설에서 빠지겠다고 발표하자 러시아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던게 이를 뒷받침한다.

일대일로와 EEU 연계 배경엔 속사정이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EEU 가입이 자칫 옛소련 처럼 러시아의 속국으로 전락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대 러시아 서방제재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걱정도 제기돼왔다.일부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어디로 줄타기할 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대일로와 EEU의 제휴로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손쉽게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가담시킬 수 있게 됐고,러시아는 EEU 확대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카자흐스탄등 중앙아시아 국가 순방 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일대일로의 연계를 거론하긴 했지만 중국처럼 자본력과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일대일로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연계 추진이라는 성과를 거두긴했지만 중국과 EEU간 경제무역 협력파트너 협정 서명과 같은 한 중러간 연계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탄력을 못받는 주요인중 하나로 남북관계의 긴장이 꼽힌다.하지만 역으로 보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중국의 일대일로 뿐 아니라 러시아의 EEU와도 연계하는데 힘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에 영향력을 갖는 중국과 러시아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파트너로 적극 활용하자는 얘기다. 북한으로서도 인프라 건설 등에 집중하는 일대일로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동시에 올라탐으로써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