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갑 서울대교수·과학기술사

짙은 향기 그윽한 커피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커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모두 솔직하게 그 맛이 쓰고 특색이 없다고 토로한다. 처음 커피를 마신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실험용 쥐까지도 모두 이를 기피한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커피를 마신 경험을 한 후, 모든 이는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그 맛과 향을 찬양하고, 커피의 로스팅과 추출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그중에는 좀 더 나은 커피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까지 나타난다.

확실히 커피에 대한 개인적 열정은 '습득'되는 것이다. 또한 커피의 소비는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처음 카페가 유럽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17세기 중반, 이곳은 귀족 사회의 허례허식을 벗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곳은 귀족과 학생, 장인과 한량들이 모여 지역 공동체의 여러 사회, 정치적 문제들이 열정적으로 토론되고, 새로운 문화와 지적 발견들이 활발히 향유되는 공적인 장소였다. 일례로 대학 근처의 카페들은 '페니 대학'(10원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귀족 학자층과 학생들, 그리고 서민들이 토론과 대화를 통해 커피 한 잔 값으로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피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열정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머리 카펜터의 '카페인 권하는 사회'는 사회적으로 향유되었던 커피와 같은 기호품들이 어떻게 우리를 중독시키는 개인적 소비 상품으로 변해갔는지를 분석한다. 우선 커피에 대한 열정의 많은 부분은 이에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에 기인한다. 카페인은 두뇌에서 수면유도 물질의 신경계 유입을 차단하여 우리를 각성시켜준다. 피로 사회라 불리는 우리 삶의 형태에 카페인만큼 매혹적인 단기 해결책은 없는 듯하다.

20세기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대화하고 휴식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사는 이들을 위한 해결책이 나타났다. 다국적 기업들은 손쉽게, 값싸고 빠르게 카페인을 공급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다. 수많은 카페인 함유 각성제와 탄산 음료들이 그것이다. 20세기 초 노벨상 수상 화학자는 요소를 가공하여 인공 카페인을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법을 개발했으며, 우리가 섭취하는 대부분의 카페인은 인도와 중국의 화학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카페인은 우리를 각성시켜주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카페인 범벅 상품이 아니라, 삶의 여유를 찾고 타인과 소통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