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웨이즈(Waze)'는 우리나라의 '국민내비 김기사'와 비슷한 스마트폰용 길 안내 앱(응용프로그램)이다. 이용자가 앱을 켜면 자신이 어느 도로에서 어떤 속도로 이동하는지, 위치와 이동 정보가 실시간으로 회사 서버로 전송된다. 앱 회사는 그렇게 수많은 이용자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이용자들에게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한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정보가 더 정확해진다. 오랫동안 축적한 교통 상황 데이터를 주요 정보원(源)으로 삼는 기존 내비게이션과 달리 이용자 자체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이다.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한 두 회사는 모두 서비스를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이용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두 회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크게 달랐다. 웨이즈는 13억달러(약 1조5000억원)에 구글에 팔렸지만, 김기사는 지난 5월 웨이즈의 4.2% 값에 불과한 626억원에 다음카카오에 팔렸다.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가 25배나 차이가 난 것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웨이즈 매각에 관여했던 이스라엘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웨이즈는 전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지만, 김기사는 한국에서밖에 못 쓰는 서비스"라고 했다. 웨이즈는 처음부터 영어로 서비스를 만들고,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구글 맵'의 데이터를 쓴 반면, 김기사는 국내 전용 지도(T맵·다음맵)와 한국어로 개발했다. 웨이즈는 현재 50여개국 4700만명이 쓰고 있고, 김기사는 국내에서만 1000만명이 쓰고 있다.

스타트업, 이스라엘의 대표 수출품

'창업 국가'의 원조(元祖)라는 이스라엘은 국토의 60%가 사막이고, 주변은 적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800만명에 불과한 인구 탓에 내수 시장도 작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의 이스라엘 경제가 채택한 생존 전략은 철저히 '글로벌 시장'을 노린 창업이었다. 연간 700여개에 달하는 IT·생명공학·의료 등 하이테크 분야 기업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인구 1만명당 1.14개꼴로 창업 밀도(Startup Density) 면에서 세계 최고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스크리모’의 공동 창업자들이 자신들이 개발한 대형 디지털스크린과 스마트폰 연동 기술을 직접 시연해 보이고 있다. 이 기술은 대형 화면 속에 나오는 게임이나 설문 조사를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참여하고 쿠폰을 내려받을 수 있게 해준다.

이스라엘의 쌍방향 디지털스크린 기술 스타트업인 '스크리모(Screemo)'. 이 회사는 거리의 대형 디지털스크린과 스마트폰을 인터넷으로 연결, 홍보용 게임을 하거나 쿠폰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거리에는 이 기술을 적용할 대형 디지털스크린이 거의 없다. 2013년 텔아비브(Tel Aviv)에서 이 회사를 창업한 짐머맨(35) 대표는 "뉴욕·런던·서울·도쿄·상하이에 내걸린 수많은 디지털스크린이 우리의 시장"이라며 "이스라엘의 창업가라면 누구나 눈앞의 시장이 아닌, 지평선 너머 더 큰 시장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창업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다 보니 이스라엘의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기업들에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2006년 이후 이스라엘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6600여개 중 총 599개가 해외 기업에 인수·합병됐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벌어들인 돈은 지난 한 해에만 148억달러(약 17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스라엘의 최대 수출 산업인 귀금속 가공업의 수출액(195억달러)에 육박했다. 전자 장비(90억달러)와 의약품(61억달러) 수출액보다는 훨씬 많다. 벤처캐피털 '카르멜 벤처스'의 투자 담당 벤도리씨는 "이스라엘에선 이런 '창업 후 해외 매각'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매각·인수 후 재투자… '연쇄 창업'의 선순환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수출'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을 매각한 창업자와 사들인 글로벌 기업 모두 이스라엘에 재투자하는 '연쇄 창업'의 선순환을 통해 일자리와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2001년 USB 메모리를 발명한 이스라엘 기업가 도브 모란(60)은 2006년 이 기술을 갖춘 자신의 회사를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미국 샌디스크(Sandisk)에 매각하고, 이듬해 모듈형 휴대폰 개발업체를 세웠다가 이 회사가 파산하자 또다시 교육용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했다. 세계 최초 인터넷 메신저 'ICQ'를 개발한 '미라빌리스' 창업자 야이르 골드핑거는 1998년 미국 AOL에 회사를 4억달러(약 4700억원)에 팔고, 이 돈을 종잣돈으로 이후 9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내 스타트업에 재투자했다.

스타트업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전 세계 벤처캐피털의 35%가 이스라엘로 모여들고 있다. 이스라엘 경제부 수석과학관실(OCS)은 "벤처 창업 생태계는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인간의 지혜와 아이디어라는 무형의 재료로 '기업'이라는 유형의 자산을 창출해낸다는 점에서 진정한 창조 경제인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