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차병원이 성인의 체세포를 복제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미국에서 신생아의 체세포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낸 적은 있으나, 성인 체세포를 이용한 실험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해외 학계가 일제히 주목했던 연구 성과였다. 이후로도 쾌거는 이어졌다.

최근 차병원은 체세포복제줄기세포 뱅킹 기술로 특허를 취득했다. 개인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 시대를 한걸음 당긴 것이다. 지난 13일 경기 판교의 연구복합단지 차바이오컴플렉스(CHA Bio Complex)에서 만난 차광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은 "차병원이 그동안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은 “줄기세포를 활용해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머지않아 줄기세포 시장을 포함한 바이오산업이 미래 산업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세포복제줄기세포 은행 특허 취득

우리 몸은 세포로 이뤄져 있다. 줄기세포란 인체 내 210여 가지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다. 어떤 세포로 키워내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게 넓어진다. 줄기세포 치료는 이러한 줄기세포의 다채로운 '변신'을 활용한다. 줄기세포로 구성된 치료제를 주입하면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근본 치료를 할 수 있다. 기존 의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료 방식이다.

차병원은 일찍이 난치병 치료의 열쇠로써 줄기세포에 주목해왔다. 2004년 법적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에 LA할리우드장로병원을 세우며 연구에 매진했다. 그러나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태 이후 국내 줄기세포 연구는 빙하기로 빠져들었다. 국가적 제약이 강화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차 회장은 "그럼에도 우리는 줄기세포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연구를 계속했다"며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 이를 둘러싼 바이오산업이 머지않아 미래 산업을 선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꾸준한 연구 덕분에 근래 차병원의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차병원은 지난 5월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망막치료제를 개발했고 실명 위기 환자 4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해 그 중 3명으로부터 시력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뤄낸 결과다. 또 제대혈(탯줄혈액)을 이용해 뇌성마비 환자를 치료해낸 연구가 줄기세포치료제 분야 최고 학술지인 '스템셀(STEM CELLS)'에 소개됐다. 특히 이는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제대혈줄기세포를 이용한 사례로서, 세계 최초의 성과라고 차병원 측은 설명했다. 제대혈을 미리 보관하지 않은 환자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차병원그룹이 오는 11월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2~3층에 오픈할 동양 최대 규모의 불임센터.

최근 차병원은 세계 처음으로 '체세포복제줄기세포 뱅킹' 시스템을 만들면서 기술 특허를 취득했다. 체세포복제줄기세포를 저장해두고 추후 필요 시 활용하도록 하는 은행을 만드는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낸 것이다. 아이디어는 차 회장에게서 나왔다. 차 회장은 "곧 임상시험 중인 각종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치료도 대중화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저장해둔 세포를 질병 치료나 예방에 사용하는 은행 방식이 활성화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복제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 확률은 6%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시험관 아이도 처음에는 성공률이 5% 정도였지만 지금은 50~60%로 높아졌습니다. 줄기세포 은행을 통해 줄기세포 치료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겁니다."

◇"배아줄기세포, iPS보다 안전해"

선진국들은 줄기세포를 포함한 바이오산업을 국가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미국·일본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일본은 역분화줄기세포(iPS)를 개발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교토대학교 iPS 세포 연구소장)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는 등 한국을 앞서고 있다. 치료에 활용되는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줄기세포와 iPS로 나뉜다. 배아줄기세포 치료는 세포와 난자를 융합하는 방식이고, iPS 치료는 쉽게 말해 세포에 바이러스를 투여하는 방법이다. 일본은 국가 차원의 지원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관련 규제도 점차 풀고 있다.

지난해 판교테크노밸리에 개관한 최첨단 연구시설 차바이오컴플렉스.

그러나 차 회장에 따르면 차병원, 더 나아가 한국은 이 판세를 뒤집을 실마리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 활용하는 줄기세포 배양 방식이 일본의 iPS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iPS보다 자연친화적 방식을 활용한 배아줄기세포 치료법이 더 안정적이면서 바람직합니다. 앞으로 이 방식이 세계를 선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는 앞으로 한국이 바이오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국가적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국가 차원에서 한국형 바이오시티를 육성하는 것이다. "도시 중심에서 초기 임상 의사들이 기초 연구를 하고, 중심지 바로 밖에는 전문병원들이 위치하며, 더 밖으로는 바이오회사·제약회사·제약공장이 설립돼야 해요. 바이오시티까지 가지 않아도 돼요. 대규모 바이오 클러스터만이라도 설립되면 연구진들이 한데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잡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또 의사들이 병원 내에서 진료만 할 것이 아니라, 기초임상과 연구를 하는 바이오시티로 다수 진출해야 합니다. 결국 이들이 세계적인 바이오 회사도 세울 수 있습니다."

◇차병원, 도전의 역사

현재 차병원그룹은 국내 의료기관 7곳과 종합건진(건강검진)센터 4곳, 대학(차의과학대학교) 1곳, 차바이오텍 등 벤처기업 10곳, 연구복합단지(차바이오컴플렉스)를 운영 중이다. 그밖에 국외 의료기관들은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을 비롯한 선진국에 진출해 있다. 이 같은 발전은 차병원의 끊임없는 도전의 결과물이다. 1984년 차 회장이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던 부친(차경섭 차병원그룹 명예이사장)의 품을 떠나 당시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강남에 강남차병원을 세운 것이 지금의 매출 2조원 가까이 되는 차병원그룹의 모태가 됐다. 1986년 국내 최초 나팔관 인공수정 아기와 민간병원 최초 시험관 아기 출산, 1987년 동양 최초로 난자 없는 여성의 임신을 각각 성공시켰으며 1998년 세계 최초로 그리드를 사용한 인간 난자의 유리화 동결 보존법을 개발하는 등 '국내 최초' '동양 최초' '세계 최초' 타이틀을 수차례 거머쥐었다.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에 있는 줄기세포 보관 탱크.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1999년 미국 뉴욕에 국내 최초 의료수술 1호로 기록된 차컬럼비아불임센터를 개설했고 2002년 LA불임치료센터와 2004년 LA할리우드장로병원을 개원했다. 지난해 일본 도쿄에 셀클리닉(TCC)이 문을 열었다. 그간 세계불임학회와 미국불임학회 등 권위 있는 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다수 받았으며,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 연구 성과가 여러 번 소개됐다. 복합형 라이프센터 차움(서울 청담동 소재)과 같은 미래형 병원을 설립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많아 다양한 국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오는 11월엔 서울역에 있는 서울스퀘어 빌딩에 동양 최대 규모의 불임센터를 열 계획이다. 차 회장은 "지방과 외국에서 오는 환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서울역을 선택했다"며 "난치병과 불임 등 각종 고민을 안고 있는 국내외 환자들을 돕기 위해 앞으로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