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大癌 검진'·내시경이 癌환자 살렸다

지난달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든 김모(55·주부)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처음 받아본 위 내시경 검진에서 1㎝짜리 암이 발견됐다. 하지만 암이 위 점막에만 있었고 조기(早期) 발견한 덕분에 내시경 시술(ESD)로 간단히 제거할 수 있었다. 김씨는 "번거로운 내시경 검사를 계속 미뤄왔는데 검진 덕분에 암을 일찍 발견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암과 싸워 이기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국립암센터가 2013년 국가 암 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새(2009~2013년) 암에 걸린 환자 가운데 69.4%가 5년 이상 생존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한 암의 조기 발견이 1등 공신"이라고 말했다.

◇조기 발견이 일등 공신

2001~2005년과 비교하면, 특히 위암(57.7→73.1%)과 대장암(66.6→75.6%)의 5년 생존율이 높아졌다. 노성훈 연세암병원 원장은 "최근에는 위암 환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조기 발견된다"면서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는 쉽고 효과는 뛰어나다"고 말했다. 대장암 역시 내시경 검사를 통해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잘 되는 암이다. 심지어 대장암으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용종(폴립·대장 점막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혹처럼 돌출한 것)일 때 찾아내 내시경으로 '암의 싹'을 잘라 버리는 경우도 많다. 노 원장은 "특히 한국인에게 흔한 위암, 간암의 경우 (국내 의료진이) 많은 경험을 쌓아 수술 기술도 월등하다"면서 "암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해 절제 부위를 최소화하고 후유증을 줄이는 측면에서는 미국, 일본보다도 나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원영주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장은 "2004년부터 국가가 건강보험을 통해 5대 암(위·대장·간·유방·자궁경부암) 검진을 지원하면서 암 검진 비율이 2004년 45.7%에서 올해 84.3%로 급증했다"면서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이런 제도 덕분에 암 조기 발견이 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이 상당히 진행되거나 심지어 다른 장기로 전이된 후에 발견되더라도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된 것도 암 환자 생존율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방영주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수술 후 병행하는 보조요법이나 항암제의 발달로 3~4기 암 환자의 생존 기간도 늘고 있다"면서 "한때 불치병으로 여기던 폐암도 5년 생존율이 (10여년 전보다) 배 가까이(16.2→23.5%) 올랐다"고 말했다.

◇암 환자 발생도 감소

2013년 새로 발생한 암 환자는 22만5343명으로 2012년보다 873명 감소했다. 1999년 전국 단위의 암 통계 산출을 시작한 이래 전년 대비 암 환자 수가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 이후 계속 증가하던 암 발생률도 2011년 인구 10만명당 324.2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2년 322.3명, 2013년 311.6명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이런 변화는 주로 갑상선암, 대장암, 위암, 간암의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남자는 2012년에 비해 주로 대장암·위암·간암 발생이 줄었고 여자는 갑상선암·대장암·위암이 많이 감소했다. 맵고 짠 음식 섭취가 많이 줄고, 위암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가 는 것이 위암을 줄였고, A·B형 간염 예방 접종 확대로 간염이 감소한 것이 간암 감소 요인으로 꼽힌다. 간염이 만성화하면 간경변을 거쳐 간암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밖에 갑상선암에 대한 과잉 검사가 줄고, 남성 흡연율이 감소한 것도 암 발생을 줄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유방암은 연평균 5.6%씩 유독 증가하고 있다. 노동영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갈수록 빨라지는 초경과 늦은 결혼, 출산이나 모유 수유 기피, 운동 부족, 동물성 지방 섭취 증가 같은 요인이 겹치면서 유방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유방암 증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정복할 수 있는 병

세계보건기구(WHO)는 "암 발생의 3분의 1은 올바른 생활 습관 실천으로 예방이 가능하고, 3분의 1은 조기 진단 및 조기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며, 조금 늦게 발견된 암환자도 적절한 치료를 하면 완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암 완치의 기준으로 알려진 '5년 생존율'로 보면, 국내의 암 경험자 2명 중 1명 이상은 완치자다. 생존율도 매년 올라가고 있다. 중앙암등록본부 통계에 따르면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1993~ 1995년 41.2%, 1996~2000년 44%, 2001~ 2005년 53.8%, 2006~2010년 66.3%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유방암의 경우 2008~2012년 기준 5년 생존율은 91.3%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암이 정복할 수 있는 병이 된 이유는 기술의 발달로 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정기 검진으로 병을 일찍 발견해 조기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새로운 약과 치료법이 개발,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몸속을 더욱 정밀하게 볼 수 있는 3D 내시경의 보급이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면역항암제'의 등장, 여러 진료과가 협력해 환자를 최선의 방법으로 치료하는 '다학제(多學際) 진료' 등이 그 예다. 암이 생기지 않도록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 면역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 확산도 한 몫 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 높아진 의료 수준

우리나라의 간암 치료성적이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의료 선진국을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지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4177명의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5년 상대생존율을 조사해 발표했다. 상대생존율이란 한 질병을 가진 환자의 생존율을 동일한 성별, 연령군을 가지는 일반 인구의 기대생존율로 나눈 값이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간암 환자는 1기 370명, 2기 1227명, 3기 830명, 4기 1240명으로, 4기 환자(29.7%)가 가장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5년 암환자 상대생존율은 30%로 미국 16.6%, 캐나다 20.0%, 일본 27.9% 보다 높았다. ▶ 관련기사

간암은 국내에서 여섯 번째 많이 생기는 암이다. 사망률은 10만명 당 22.6명으로 폐암에 이어 두번째며 OECD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간암 원인은 확실하다. 바로 B형, C형 간염 바이러스다. 국내 간암의 70%는 B형간염, 10%는 C형간염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만성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인구의 3%인 15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B형간염 예방백신이 1995년 국가필수 접종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그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이전 출생자들이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간염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최근에 나온 항바이러스제는 섬유화된 간도 정상으로 되돌릴 정도로 효과가 좋다.

간염, 간경화 거쳐 간암으로 이어져

B형간염 바이러스는 간세포의 핵에 침투해 자기 자신을 복제한다. 간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간세포에 염증 반응이 생기는데 이게 간염이다. 간염이 지속되면 간세포가 파괴됐다가 재생하는 과정에서 간 조직이 딱딱하게 변한다. 이게 간섬유화다. 유화된 간이 회복하지 못해 계속 딱딱해지면 혈액이 더 이상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되고 간이 제 기능을 못하는 간경화에 이른다. 간경화가 진행되면 간암이 된다.

딱딱해진 간, 약으로 부드럽게 할 수 있어

예전에는 간염이 간섬유화로 커지면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약이 이를 뒤집었다. 바이러스 수치를 지속적으로 억제하면 간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2013년 세계적인 학술지인 란셋에 실렸다. 프랑스 연구팀이 비리어드(길리어드 사이언스)라는 약을 5년 동안 먹은 만성 B형간염 환자 348명의 상태를 분석했더니 환자의 96%에서 간섬유화가 호전되거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바이러스를 억제하면 면역체계가 간세포를 공격할 필요가 없어져 간에 더 이상 상처가 생기지 않고, 뛰어난 재생능력으로 손상된 간이 치유된 것이다. ▶ 관련기사

1940년대 처음 선보인 항암제는 정상세포에 비해 빨리 분화하는 암세포의 특징을 이용해 암을 공격했다. 하지만 모근, 상피, 손톱 같이 분화 속도가 빠른 정상세포도 함께 공격하기 때문에 탈모, 위장장애 같은 부작용이 심했다. 현재는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 전 종양 크기를 줄이는 목적, 수술 후 재발을 막는 목적으로 많이 쓴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의 기능을 높이는 면역항암제는 특정 암에만 쓰는 표적항암제와 달리 여러 암에 두루 쓸 수 있다.

[표적항암제 일반 세포와 다른 암세포 만의 특징을 찾아… ]

1999년 백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공격하는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개발된 이후 유방암, 대장암, 폐암 등의 표적항암제가 잇따라 선보이면서 암 치료 성적이 좋아졌다. 하지만 표적항암제는 암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있어야 효과가 있고, 오래 쓰면 암이 항암제의 공격에서 살아 남아 내성이 생겼다.

지난 3월 식약처에서 흑색종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은 면역항암제는 암세포와 면역세포 사이의 신호에 작용,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한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작용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모든 암에 쓸 수 있다"며 "치료법이 없는 환자를 내성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연세암병원 두경부암센터

두경부암은 입·코·목·혀 등에 생기는 암이다. 두경부(頭頸部)는 '해부학의 꽃'이라고 할 만큼 여러 장기들이 촘촘히 붙어있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어렵고, 수술을 해도 말하고 먹고 숨쉬는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연세암병원 김세헌 두경부암센터장(두경부외과)은 "두경부암은 수술이 정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체 부위·기관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수술할 수 있도록 방사선·항암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암 수술 후에는 성형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로봇 팔을 입 속으로 집어 넣어 후두 등에 생긴 암을 제거하는 모습.

김 센터장은 "우리 센터에서는 8개 진료과의 전문의가 모여 두경부암 환자의 치료 방향을 심도있게 논의한 뒤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경부에는 뇌로 가는 모든 신경과 혈관이 모여 있다. 수술 중 작은 실수라도 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연세암병원은 2008년 국내 처음으로 두경부암 수술에 로봇을 도입했다. 김세현 교수는 "편도와 혀뿌리에 생기는 구인두암은 손이 닿지 않아 수술을 못하거나, 턱뼈를 가르는 등 대수술이 불가피했다"며 "하지만 로봇을 이용하게 되면서 입을 통해 수술 기구를 넣어 외상 없이 정확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혀뿌리와 편도는 물론, 목 부위의 후두와 하인두의 암까지도 로봇으로 수술하고 있다. ▶ 관련기사

병원에서 암을 치료할 때 수술, 약물치료(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의 방법을 선택한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게 수술이다. 암 수술의 성공 여부는 신체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과 수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달려있다. 그런 측면에서 '복강경(腹腔鏡)' 수술은 개복 수술과 비교했을 때 획기적인 의료기술의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복강경 수술이란 복부 서너곳에 지름 0.5~1.5㎝의 작은 구멍을 내고, 구멍을 통해 카메라와 수술 가위, 초음파 기기 등을 집어 넣어 수술을 하는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김형호 교수는 "배를 열지 않는 복강경 수술은 몸에 상처를 덜 남길 뿐 아니라 합병증 위험이 적기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눈으로 직접 확인이 안되기 때문에 정교한 수술이 불가능하다"며 복강경 수술을 꺼리는 의사가 많았다. 하지만 의료장비 기술 발전 덕분에 뱃속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입체 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되자, 복강경 수술은 모든 외과 수술의 대세가 됐다. ▶ 관련기사

복강경 수술은 배에 작은 구멍을 뚫어 카메라와 절삭기 등을 넣어 배 안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뱃속을 입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3D 기술도 접목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김형호 교수가 3D 복강경을 이용해 위암 수술을 하는 모습.

연세암병원 췌장담도암센터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8.8%로, 다른 암에 비해 매우 낮아 '독한 암'으로 꼽힌다(중앙암등록본부). 암은 수술을 해야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데, 췌장암을 발견했을 때 수술을 할 수 있는 경우도 20%에 불과하다. 박승우 교수는 "췌장암으로 병원에 온 환자의 50%는 암이 온 몸에 퍼져 있다"며 "초기 증상도 없고, 췌장 주변에 큰 혈관이 지나가 다른 암보다 전이가 잘 된다"고 말했다.

췌장암은 수십 년 동안 뚜렷한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 생존율에 큰 변화가 없는 절망적인 암이다. 그래서 환자 상태에 따라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보존적 요법 등 최선의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박승우 교수는 "우리 병원은 췌장암 치료 전 내과·외과·방사선종양학과·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활발한 토론과 협진을 하고 있다"며 "수술이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를 잘 선택해 생존율을 높이고, 항암·방사선 치료를 통해 생존 기간을 연장하거나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암병원은 최근 5년 간 수술이 가능한 환자가 2배가 넘게 증가했다. 수술 환자의 1년 생존율은 88%에서 최근 5년 사이에 92%로 증가했다.

환자 맞춤형 치료도 시도되고 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어떤 환자에게 항암제가 잘 듣고, 방사선 치료가 잘 듣는지 알 길이 없었다"며 "환자들의 췌장암 조직을 모아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적합한 치료제를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