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화 발표와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고비로 꽉 막힌 대일(對日) 관계 복원에 본격 착수했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연내에 성사시키고 이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도 개최할 움직임이다.

아베 담화는 우리 기준으로 보면 알맹이 없는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아베 총리는 일제(日帝)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직접 사죄·반성하지 않고 그 대신 '3인칭 과거형 사죄'라는 신종 방식을 동원했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담화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우리 외교부는 당일 아베 담화에 대한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외교부는 성명이 아닌 논평만을 마지못해 냈을 뿐이다. 박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아베 담화가)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만 했다. 어떻게든 한·일 관계를 풀어보기 위해 이런 절제된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한·일 관계는 박 대통령 취임 후 2년 6개월 동안 정상회담은 물론 장관급 회담들까지 줄줄이 취소될 정도로 최악의 상태다. 아베 정권의 퇴행적 역사 인식을 응징하겠다며 외교 채널을 끊어버린 결과다.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으려는 정부의 변화는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 정부가 아베 담화에 대해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것으로 대일 외교를 일관해왔다. 대통령은 미 국방장관을 만나 "정상 둘이 앉아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작년 10월엔 아베 총리의 친서를 들고 온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을 만나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현안을 적당히 넘어가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토록 강경하던 정부가 외교 기조를 바꿨다면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최고 당국자가 국민 앞에 설명을 하는 것이 도리다. 만약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팀의 전략과 조언이 잘못됐다면 지금의 외교팀을 문책하고서 대일 전략을 바꾸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일본에 대한 '입조심'을 하며 저자세(低姿勢)를 취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니 어떻게 국민이 이 정부의 외교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외교부가 이런 입장 변경을 '미래형 대응'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자신들의 실패를 감추기 위한 둘러대기나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이제 와서 한·일 관계 복원에 나선 것은 자칫 한국만 고립되는 것 같은 국제 환경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미·일 동맹 강화를 미국 외교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 일본의 가치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베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일본과 손을 잡을 수 있는 나라다. 애초에 이 정부 외교팀이 원칙과 현실의 융합 없이 오락가락하면서 국제 관계에서 우리 내부의 정서와 감정을 더 앞세운 게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짚어봐야 할 것은 미국의 태도다. 미 국무부는 아베 담화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끔찍한 인권침해"라고 했던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한 태도라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일 관계가 왜 갈등의 연속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미국 정부는 무조건적인 아베 정권 지지가 한국 내에서 '한·미·일 3각 안보 공조'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설] 고속도로 '暴走 화물차' 난폭 운전 막을 대책을
[사설] 신동빈의 롯데, 투명 경영·일자리 창출 약속 실천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