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8·15 경축사는 화려한 웅변(雄辯)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복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맞춰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수사(修辭)를 찾기 힘들었고 간절한 호소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대(對)국민, 대북(對北), 대일(對日) 메시지에 초점을 맞췄다.

박 대통령은 먼저 국민을 향해 "지난 70년은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었다"며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미래 세대에게 희망의 대한민국을 물려주자"고 했다. 박 대통령이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개혁 과제들을 어떻게 추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우선 대통령과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방안은 보이지 않았다. 각 세대와 계층을 향해 대통령의 진심을 담은 당부와 요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설이 너무 밋밋하다" "감동이 없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대북·대일 구상을 놓고 가장 고심했다고 한다. 북은 8·15를 앞두고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을 저질렀다. 아베 일본 총리 역시 8·15 전날 내놓은 담화(談話)에서 일제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지 않았다. 이런 북한과 일본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실망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대북·대일 대화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북의 어떤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면서도 남북 대화와 상생·협력을 강조했다. 지뢰 도발은 거꾸로 DMZ 평화공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고 했고, 6만여명 이산가족 명단을 북측에 전달하겠으니 이들을 위한 면회소를 만들어 수시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아베 담화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과거사 사죄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과 일본 문제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미래를 향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꽉 막힌 대북·대일 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박 대통령의 대화 제안은 우리들만의 독백(獨白)으로 끝나거나 북·일이 상황을 오판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북은 지뢰 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무차별 타격을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일본도 아베 담화를 직접 비판하지 않은 대통령의 경축사를 마치 자신들의 '외교적 승리'로 여기는 아전인수에 가까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북은 도발해오고 일본은 대놓고 한국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대일 대화 제의는 이제 이 정부의 외교, 더 나아가 이 정권의 성패(成敗)가 걸린 사안이 됐다. 여기서 발을 잘못 디디면 대한민국은 만성적인 지체(遲滯)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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