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일 일본 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 현안이 남아 있지만 안보·경제 등에서 한·일 대화와 협력을 계속 강화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번도 갖지 않은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남아 있는 현안들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사 문제 해결이 중요하지만 안보·경제와 분리(分離) 대응할 것이라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사실상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 조건인 듯한 입장을 취해왔다.

한국 외교부가 얼마 전부터 과거사와 안보·경제 현안 분리 대응으로 선회했지만 아무런 실효는 없었다. 정상(頂上) 차원에서 드러낸 상대방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도 큰 무게로 한·일 관계 전반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한·일 간에는 장관급 회담은 물론 그 이하 차관·국장급 회담에 이르기까지 정부 간 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지난 6월에야 2년여 만에 어렵게 처음 열렸을 정도다.

반면 한국을 향해 먼저 '대일(對日) 역사 연대'를 하자는 움직임을 보이던 중국은 이미 국제회의 참석을 계기로 일본과 두 차례 약식(略式)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는 9월쯤 아베 총리가 중국을 공식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뛰어넘어 직거래(直去來)를 시작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를 한·일 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이 정부의 단선(單線)적 접근이 자초한 외교적 고립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정부가 내건 과거사와 경제·안보 분리 대응 방침 역시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지금 아베 총리는 오는 8월 15일에 맞춰 내놓을 '아베 담화'의 문안(文案)을 막판 조율 중이라고 한다. 그간 아베 총리 언행을 보면 이번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歷代) 담화 수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는 이번 담화가 한·일 관계를 또 벼랑으로 내몰게 할 경우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것은 별개 문제다. 일본의 도발에 맞선 봉쇄 전략은 오히려 한국 외교의 손과 발을 묶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정상회담을 무턱대고 거부하다 이제는 정상회담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극단(極端)에서 극단을 오락가락하는 행태이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의 즉흥적 외교 전략이 과연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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