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분홍 배롱꽃 핀' 안동 병산서원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흔히 '나무 백일홍' '목백일홍'이라고 부른다. 백일홍처럼 꽃이 석 달 열흘을 간다고 해서다. 알고 보면 한 꽃이 백일을 피는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피고 진다. 레이스처럼 화사한 진분홍 꽃 떨기가 선비와 그리 어울리지 않을 법한데도 뜻밖에 옛 서원이나 정자에 많이 심었다. 담양 명옥헌 배롱나무 숲이 제일 이름났다. 정자 중에 으뜸이라는 담양 소쇄원과 윤선도가 보길도에 가꾼 세연정도 여름 원림園林을 배롱꽃이 빛낸다.
경주 양반고을 양동마을에서도 하회나무 향나무 다음으로 많은 것이 배롱나무다. 꽃이 내내 갈 것 같다가도 결국 지고 마는 모습에서 옛 선비들은 권력의 덧없음을 배웠다고 한다. 껍질 없이 뼈를 드러낸 줄기에서 불가佛家가 무욕無慾을 보아내듯, 유학자들은 청백리를 떠올렸다. 붉은 꽃을 보면서는 임금이 내리는 어사화御賜花를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채찍으로 삼았다.

단아한 병산서원과 화사한 배롱꽃


안동 병산서원은 유서 깊은 사액賜額 서원이면서도 아담하고 단아하다. 멀지 않은 낙동강변 도산서원이나 사액서원의 효시 영주 소수서원에 비하면 얼핏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병산서원을 우리나라 서원 중에 으뜸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 서원이 지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덕분이다. 꼭 있어야 할 집만 단출하게 짓고 그것도 자연에 녹아들 듯 들어 앉혔다. 그 수수하면서도 도학적인 이미지가 사람들 마음을 잡아당긴다. 서애 류성룡이 후학을 가르치던 서당이 서애 위패를 모신 사당이자 사액서원이 됐다.

병산서원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배롱꽃 피는 여름이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 동쪽, 화산 뒷자락 낙동강가에 숨듯 자리했다. 서원 앞 잔디밭에서부터 배롱꽃이 객을 맞는다. 사람을 달뜨게 하는 화려함이 아니라 눈과 마음을 씻어주는 화사함이다. 서원 들어서는 복례문부터 여염집 문간처럼 수수하다. 담 안에서 배롱나무들이 꽃가지를 내밀어 바깥 구경을 한다.

대문 들어서면 왼쪽 자그마한 연못 광영지光影池 곁에도 배롱나무가 붉은 꽃떨기를 매달았다. 연못 이름 빛 그림자 대신 꽃 그림자를 드리웠다. 개구리밥 덮은 못에 붉은 수련 꽃이 떠다니듯 피었다. 연잎 위에 개구리가 올라앉아 더위를 식힌다.

자연과 하나되는 만루대
선비 혼 깃든 입교당

병산서원은 서애 사당까지 합쳐 여덟 채밖에 안 된다. 복례문 지나 석축 한 단 올라서면 만대루, 만대루 아래 지나 또 한 단 오르면 공부 가르치는 강학공간 입교당이다.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 만대루는 200명도 넘게 들어갈 만큼 큰 누각이다. 휴식과 공부를 겸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만대루엔 건물도 자연의 하나로 여겼던 조상들 생각이 담겼다. 주춧돌은 정으로 쪼아내지도 않은 듯 생긴 그대로 기둥을 받쳤다. 기둥은 휜 그대로 누각을 받쳤다. 대들보는 바로 앞 낙동강처럼 구불구불한 채로 지붕을 받쳤다. 계단은 커다란 통나무 한 덩어리를 투박하게 잘라내 걸쳤다.

만대루萬對樓라는 이름은 두보 시 ‘백제성루白帝城樓’ 한 구절 ‘푸른 병풍처럼 둘러친 산수를 늦을 녘 마주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 왔다. 만대루에 오르면 솔숲 너머 너른 백사장이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건너편에 짙푸른 병산屛山이 병풍屛風 두르듯 서 있다. 가깝고 먼 풍경이 한 폭 수묵화로 어우러진다. 시간이 멈춰선 것 같은 풍경이다. 아쉽게도 만대루는 올라가지 못한다. 단체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누각이 버텨내지 못할까 염려해서다. 난간 위까지 솟아오른 배롱꽃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유생을 가르쳤던 입교당 뒤, 서애 부자 위패를 모신 존덕사 앞에 400살 가까운 8m 배롱 거목이 붉은 꽃 구름을 피워 올렸다. 340년 전 서애가 이곳으로 서당을 옮겨오기 전부터 낙동강변 언덕을 지키고 있다. 입교당 뒷벽 떼어낸 판문으로 보이는 배롱꽃이 그대로 액자 사진이다. 병산서원 배롱꽃은 서원의 문향文香과 정취를 돋워준다. 선비 혼魂처럼 기품 있다.

서원 앞 강변으로 나간다. 웬만한 해수욕장 못지않게 너른 백사장이 펼쳐진다. 맞은 편 짙은 녹음으로 덮인 병산이 거대한 성채처럼 강물을 따라 버티고 섰다. 낙동강은 물도리동 하회마을 쪽 서쪽으로 흘러간다. 래프팅 두 팀이 노로 강물을 끼얹으며 물싸움을 한다. 낙동강 상류, 그것도 근엄하기로 이름난 하회마을과 경건한 병산서원 앞에서 젊음의 래프팅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신선한 구경거리다.

병산서원은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여준다. 고즈넉함, 아늑함으로 길손을 품어준다. 왜 병산서원을 최고 서원으로 꼽는 이가 왜 많은지 알았다.

혀보다 마음으로 먹는
안동 건진국수

안동국수는 누름국수와 건진국수 두 가지가 있다. 누름국수는 서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뜨거운 칼국수다. 건진국수는 옛날 안동 양반들이 여름에 뜨거운 국수 대신 찬 육수 부어 먹었던 여름 별미다. 미리 삶아 건져둔다고 해서 건진국수다. 면발을 누름국수보다 얇게 밀고 찬물에 헹궈 두기까지 시간도 손품도 훨씬 많이 든다. 그래서 이젠 안동에서도 먹어보기 힘든 국수가 됐다.

병산서원을 돌아 나와 하회마을 강 건너편 부용대 가는 길목에 아담하고 깔끔한 단층 양옥이 있다. 일흔두 살 박재숙 할머니가 꾸리는 민박집 ‘박재숙농가민박’이다. 두 시간 앞서 전화로 건진국수를 주문해놓고 찾아갔다. 너른 거실 한쪽 부엌에서 할머니가 서둘러 상을 본다.

소박 조촐하면서도 마음 따스한 국수상에 절로 감탄이 터진다. 푸짐한 국수에 구운 김을 가지런히 잘라 올렸고 얌전한 달걀 지단과 볶아 부순 깨를 듬뿍 얹었다. 주전자에 따로 내준 육수를 부어 휘휘 저으니 정말 양이 많다. 할머니가 밀가루 반죽을 송판 위에 홍두깨로 30분 동안 얇게 밀어 썰어낸 면발이다.

육수는 원래 말린 은어를 우려냈다고 한다. 은어가 귀해져 이젠 흔히 닭 육수를 쓴다. 하지만 할머니는 찬 국물에 기름 뜨는 게 싫어서 멸치 명태 다시마 무 양파로 국물을 낸다고 한다. 국물의 첫 맛은 정갈함이다.

요즘엔 전분 섞은 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 입맛이 쫄깃거리는 국수에 길들여 있다. 할머니 국수는 아무것도 섞지 않은 밀가루만으로 빚어 쉽게 툭툭 끊어진다. 조금 퍼석한 느낌도 난다. 하지만 어릴 적 식구들 둘러앉아 먹었던 국수에서 나던 풋내 닮은 냄새가 난다. 순하고 슴슴한 국물과 어우러져 혀도 속도 편안하다.

반찬으론 젓갈 적게 넣어 시원한 김치. 부드러운 여름 가지 볶음이 올랐다. 찬 채소는 모두 밭에서 가꾼 것이라고 한다. 탱글탱글 아삭아삭한 풋고추도 방금 텃밭에서 따왔다.

할머니는 십 몇 년 전 홀로 된 뒤 남매를 다 키워 도시로 내보내고 혼자 농사 지으며 살았다. 그러다 적적하지 않게 민박집도 꾸리고 가끔 오는 손님들에게 국수도 차려주게 됐다. 민박 간판으로 할머니 성함을 내걸 ‘세련된’ 생각을 어떻게 하셨느냐고 여쭸다. 근처 옥연정사에 민박 꾸리는 분이 귀띔해줬다고 한다.

건진국수는 어머니께 배웠다고 했다. 식당 열 생각은 없고 어쩌다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단체 손님도 받아봤는데 할 일이 아니더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저 어찌 알고 와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햇콩으로 손두부도 빚어 차린다. 자극적인 도시 음식에 길들인 입맛으로는 덤덤하고 무미할 수도 있겠다. 그 깊은 맛을 알려면 몇 번 더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 국수라고 할까.

적어도 두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 예약해야 한다. 반죽하고 밀고 썰고 삶고 식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값은 7천원. 국수 한 그릇에 가득 담긴 시간과 정성은 값으로 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