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199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역(完譯) 출간했던 김수행(73·사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로 꼽혔던 김 교수는 1989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2008년 정년퇴임까지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했다. 2일 성공회대와 지인들에 따르면, 김 교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현지에서 숨을 거뒀으며 유가족들은 미국에서 장례를 치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194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해방 직후 귀국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대학 시절에는 서울대 상대(商大) 서클인 '경우회'에 가입해서 종속이론과 제국주의론을 공부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보름간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69~1975년 외환은행에서 근무했다. 외환은행 런던 지점에서 근무할 당시 영국 경제의 불황을 지켜본 뒤 사표를 내고 런던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귀국 직후 한신대 교수로 임용됐다.

1987년 민주화 열기로 서울대에서도 '진보적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주장이 거세게 불거졌다. 당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경제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이전부터 번역하던 '자본론'은 1989~1990년 차례로 출간됐다.

그는 정년 퇴임 강연문에서 "어릴 적부터 가난에 관심이 많았다. 매우 똑똑한 친구들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고교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퇴임 당시 인터뷰에서는 "서울대 교수가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식으로 출간해버리니, 경찰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더라. 그 책 판 돈으로 아파트(경기도 산본) 분양 값도 냈다. 마르크스가 아파트를 사준 셈"이라고 말했다. 2007년 회고록에서는 "앞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더욱 발전해 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김 교수는 이론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했다. '자본론'과 더불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번역했으며 2010년에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