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수 A를 5로 나누었더니 몫이 8이고, 나머지가 3이었다. A를 7로 나눈 나머지는?(정답은 1)"

이달 중순 딸을 출산한 이모(24)씨는 출산 보름 전까지 중학생용 수학 문제집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 매일 30분씩 수학 문제를 풀고 '19×19단'을 외우고야 잠에 들었다. 이씨는 '태교로 수학 공부를 하면 아이 두뇌 발달에 좋다'는 주변 엄마들의 조언에 따라 임신 5개월차부터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아는 언니가 임신하고 수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 4살이 된 아이가 구구단을 벌써 다 뗐더라"는 임신부 카페의 태교 후기도 이씨를 자극했다. 이씨는 "임신 3개월부터 태아의 뇌 발달이 이뤄진다고 해서 너무 늦지 않았는지 걱정했다"며 "고등학교 때 나는 수학 공부를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내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임신부들 사이에서 '수학 태교(胎敎)'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중·고등학생 가운데 수학을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면서 '내 아이는 수포자로 만들지 않겠다'는 예비 엄마들이 수학 조기교육 대열에 합류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5월 전국 초·중·고교생과 수학 교사 9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학이 너무 어려워 공부를 포기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초등학교 36.5%, 중학교 46.2%, 고등학교 59.7%였다.

수학 태교 바람은 이처럼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포자가 느는 데 대한 엄마들의 '공포' 심리가 반영된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실제 임신부들이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입덧 시작하기 전에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던데 지금은 너무 늦나요?" "태교용 수학 문제집 추천해주세요" "EBS 교육방송을 듣는 게 낫나요, 학습지 과외를 받는 게 낫나요?" 등 예비 엄마들의 '수학 태교' 상담 글이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임신부 가운데는 초·중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수학 학습지를 신청하거나, 다른 예비 엄마들과 '수학 스터디'를 하는 경우도 있다. 초등학생용 학습지 회사에서 5년간 방문 수학 교사로 일한 김모(여·40)씨는 "임신부들이 '성인인 나도 학습지를 받아볼 수 있느냐'는 문의를 종종 한다"며 "유난 떤다는 주변 시선 때문에 직접 과외를 받기보다는 태아 이름으로 학습지만 받아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에 사는 임신 6개월차 임신부는 최근 "근처에 사는 예비 엄마들끼리 매주 금요일에 모여 '수학의 정석(定石)' 문제풀이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하는 글을 임신부 커뮤니티에 올렸다.

하지만 임신 중에 수학을 공부하거나 가까이한다고 해서 아이의 수학 실력이 높아진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히려 임신부가 수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아 건강에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부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할 경우 자궁 수축이 일어나 태아의 혈류를 감소시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시원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엄마가 맘 편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가장 쉽고 확실한 태교법"이라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소리 내 읽는 등 태아의 청각을 자극하는 태교법도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