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왼쪽)과 이방자 여사 부부. 재일교포 하정웅씨의 기증 자료.

"실록에 질투가 심했다는 기록이 많다. 인형을 만들어 저주하고 독약으로 궁인을 해하려 했으며, 무자(無子)하는 비방,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되게 하는 법 등을 썼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 연산군이 되살아나 이 기록을 읽으면 또다시 사화(士禍)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이 구절은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원장 이배용)이 최근 발간한 '한국 왕실여성 인물사전' 가운데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廢妃) 윤씨에 대한 설명이다. 폐비 윤씨는 성종의 왕비였지만 1479년 폐위됐으며 3년 뒤인 1482년 사사됐다. 왕실여성 인물사전은 "왕을 바라볼 때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는 등 왕에 대한 불경이 문제가 됐다"고 해설한다. 폐비 윤씨의 복위를 추진하려던 연산군이 이를 반대하던 사림파(士林派) 선비들을 박해한 사건이 갑자사화(甲子士禍)다.

'한국 왕실여성 인물사전'은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왕실 여성 588명의 가족관계와 혼인, 출산 등을 사전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한중연은 "왕실 여성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인물 사전"이라고 밝혔다. 김창겸·김선주·권순형·이순구·이성임·임혜련 등 시기별 전공자들이 집필을 나눠 맡았다.

시대순으로 봤을 때 이 사전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은 고조선의 건국 시조 단군(檀君)을 낳은 웅녀(熊女)다. 인물사전은 "환웅(桓雄)과 웅녀의 결합은 천신계(天神界)의 유이민 세력이 지신계(地神界)의 토착세력을 흡수 통합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李方子·1901~1989) 여사는 사전에 등장하는 마지막 여성에 해당한다. 인물사전은 이 여사에 대한 항목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비운의 여인'이라는 비극적 모습뿐 아니라, 광복 이후 신체장애자재활협의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사회봉사 활동에 앞장섰던 '선구자'의 모습도 동등하게 부각하고 있다.

한중연은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왕실 여성들은 '궁중 암투의 원인 제공자'라는 식으로 부정적이고 과장된 이미지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2000년대 이후 여성사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존재였던 왕실 여성의 삶과 업적을 새롭게 정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