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씨의 1주기 기념식이 2007년 1월 29일 오전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참석한 부인 구보타 시게코씨가 남편의 작품 `다다익선`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故백남준 부인 별세 下] - '백남준 아내' 구보타 시게코

“남들은 그이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하지만 내겐 그저 커다란 아기(big baby)였죠.”

지난 2006년 74세를 일기로 타계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白南準)씨의 반려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0) 여사가 남편의 1주기를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2007년 1월 27일 서울에 왔다. 서울 봉은사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참석하고, 지인들과 만나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 기념관을 방문했다. 21일, 22일 두 차례에 걸쳐 뉴욕 맨해튼 소호에 있는 자택에서 본지와 통화한 구보타씨는 “평생 싸웠지만 정말 사랑했다”며 “남편이 떠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 내 곁에 있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안다”고 했다.

['바람 같은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친 여자]

―남편이 사망한 뒤 1년은 어떻게 지냈습니까?

“96년 그가 쓰러진 뒤 10년 동안 나는 사생활이 없었어요. 늘 집에 간병인이 있었고, 할 일이 많았어요. 병원도 모시고 가야 하고, 의사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도와야 하고…. 10년 만에 생긴 자유시간으로, 나는 그이를 찍은 비디오를 봐요. 그가 살아있을 때 나는 일기 쓰듯 비디오를 찍었어요. 우리 집엔 나와 남편이 서로를 찍은 비디오가 2만7300개 있어요. 아예 ‘자동 반복’ 기능을 설정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루 몇 시간씩 봐요. 보면서 안 우냐고요? 왜 안 울어요? 울고, 웃고, 화내고, 말 걸고, 별 일 다하죠. 그이 목소리 들으면서 잠 들고 깨요. 그는 살아있을 때 내가 외출할 때마다 ‘어디 가?’ ‘언제 와?’ 물어봤어요. 그가 간 뒤에도 나는 집 밖에 나갈 때마다 ‘남준, 나 장 보러 간다’ 이래요. 돌아오면 ‘나 왔어, 기다렸지?’ 하죠.”

―대답이 있던가요?

“그이는 늘 내 곁에 있어요. 우리 집에 그가 13세 때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한 CD가 있어요. 난 그게 제일 좋아요. 들으면 그가 옆에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져요. 독일 방송국이랑 인터뷰한 걸 녹화한 비디오가 있는데, 들을 때마다 그가 얼마나 똑똑하고 멋있는 남자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1992년 경주를 방문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는 사진작가 이은주씨가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이쁘게 잘 찍어줘”했다

첫눈에 ‘아, 정말 잘생겼다’ 내가 ‘욘사마 열풍’ 1호였나봐

두 사람은 1963년 도쿄에서 처음 만나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연애했다. 70년 백남준씨가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교편을 잡기 위해 뉴욕을 떠날 때 구보타씨가 “당신 없는 뉴욕에 못 산다”며 따라 나섰다. 둘은 7년간 함께 살다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왜 그렇게 좋았습니까?

“요즘 일본 여자들이 욘사마(배용준)처럼 멋진 한국 배우들 좋아하지요? 내가 1호였나봐. 딱 보고 ‘아, 정말 잘생겼다, 멋지고 똑똑한 남자다!’ 했어요. 그가 유명해서 사랑한 건 아니에요. 내가 사랑한 60년대의 백남준은 가난하고, 무명이었어요. 전위예술가 사이에서만 유명했죠.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몰락해서 유산도 없고, 부모도 돌아가셔서 안 계셨어요. 시댁, 없으면 외롭지만 있으면 골칫거리도 많이 생기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대뜸 ‘당신, 이 세상에 혼자냐’고 묻자, 그가 ‘그래, 나 혼자야’ 했어요. 나는 ‘오, 좋아!’ 했죠. 뉴욕에서 힘들었어요. 그는 침대가 없어서 마루에서 자는 처지에 ‘작품 하려면 TV 100대를 사야한다’고 하는 남자였어요. 77년 독일 뒤셀도르프 미대에 비디오 아트 과목 강사 자리를 얻을 때까지, 그는 일자리가 없었어요. 내가 뉴욕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서 일해서 둘이 먹고 살았죠. 돈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또, 그가 가끔 ‘나, 내 마누라가 오노 요코처럼 유명한 여자 예술가였으면 좋겠어’ 했어요. 그럼 나는 ‘뭐라고!’ 하고 막 화를 냈지요. 나도 비디오 아트를 한 작가지만, 그는 유명하고, 난 아니죠. 그에게 ‘난 유명해질 필요 없는 사람이야. 그저 좋은 예술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이야’ 했어요.”

["남준이 '내 스튜디오에 놀러 올래' 하면 그 다음은 '응응'이었어요"]

―개인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소녀처럼 깔깔 웃고) 스마트하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어요."

―다정했습니까?

“96년 쓰러지고 나서 2001년에 그가 내게 편지를 보냈어요. ‘시게코, 넌 젊어선 멋진 애인이었고, 늙어선 최고의 엄마이자 부처가 됐어’라고 했어요. 그걸 읽고 내가 깔깔 웃으면서 ‘남준, 당신 정말 웃겨요. 불교도도 아니면서’ 하고 놀렸죠. 그 편지, 늘 가지고 다녀요. 자주 꺼내보죠.”

―남편이 사망한 후 1년간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요?

“그이가 더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할 때. (그녀는 잠깐 침묵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당뇨를 앓았어요. 그도 47살에 당뇨 진단을 받았죠. 병세가 악화되지 않게 조절했어야 하는데, 그는 그걸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리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도 늘 주머니에 단 걸 갖고 다니며 아이처럼 먹었죠. 나는 일본 니가타에서 자랐어요. 친정은 화목한 대가족에, 중산층이고, 장수 가족이에요.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죠. 어머니는 100세이시고, 피아니스트인 언니랑 여동생도 살아있어요. 그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슬픔을 졸업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언젠가 졸업하긴 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어요.”

구보타씨는 “우리 부부는 자주 서울에 갔지만 한번도 한국에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행자처럼, 집시처럼 살았지만 남편의 나라 한국이 좋다”고도 했다.

“그는 무가(巫歌)를 좋아했어요. 그가 죽은 뒤 뉴욕 한인타운에 가서 무속음악CD를 사다 들었어요. 그가 왜 좋아했는지 알았어요. 굉장히 영적인 음악이에요.”

그는 유명한 남성 작가와 산 무명 여성 작가였다. 남편과 함께, 혹은 따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1997년을 마지막으로 남편을 간병하느라 더는 개인전을 열지 못했다. 오는 9월 뉴욕에서 여는 개인전은 10년만에 ‘아내’ 구보타에서 ‘작가’ 구보타로 돌아오는 자리다. 그는 “나는 야심적인 여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도쿄에서 고교 교사를 했을 거예요. 그를 만나서 정말 재밌고 행복했어요. 그는 평생 어려서 죽은 누이를 애틋하게 그리워했어요. 우리는 부부였지만, 동시에 오누이같았어요. 가난하던 시절, 한번은 그에게 ‘나같은 평범한 일본 중산층 집 딸 말고, 전시회 척척 열어주는 부잣집 딸이랑 결혼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가 딱 한마디 했어요. ‘그런 여자 건방져서 싫어.’ 우리, 40년간 굉장히 사랑했어요.”

메가트론은 150대의 TV 모니터를 동원, 컴퓨터로 제어되는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를 사용하여 비디오와 컴퓨터 그래픽의 탁월한 합성을 연출해낸 작품이다. 150대의 모니터가 하나의 대형 화면을 만들어 내고 그 위에서 스포츠 경기의 역동적인 장면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빠르게 반복, 변화하며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출처=국민체육진흥공단 올림픽파크 홈페이지
다다익선. 1003개의 TV모니터로 구성된 작품. 1988년作
금관. 백남준은 백제 금관을 이 작품의 소재로 삼아 전통적 소재와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결합함으로써동양과 서양,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전시 중인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수성(Mercury)〉.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과 K20미술관은 콰드리에날레를 맞아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다.
백남준 작품인‘TV 부처’가 백남준아트센터 2층 특별전시장에 놓여 있다. 폐쇄회로시스템을 이용해 만든 작품으로 카메라가 부처상을 실시간 촬영해 텔레비전으로 내보내면 부처는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관조한다.
백남준 작품인‘TV 부처’가 백남준아트센터 2층 특별전시장에 놓여 있다. 폐쇄회로시스템을 이용해 만든 작품으로 카메라가 부처상을 실시간 촬영해 텔레비전으로 내보내면 부처는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관조한다.

[백남준의 전성기 모습과 마지막 나날, 부부 일상이 담긴 영상 자료 3편 (익스플로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