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때의 미군 C레이션. 고기 통조림뿐 아니라 비스킷, 분말 주스, 커피, 설탕, 담배, 스푼까지 들어있었다.

모두들 허리띠 졸라매며 살던 1971년. 맛난 것에 대한 갈증이 어이없는 참사를 불렀다. 그해 5월 10일 경기도 건축 공사장에서 일하던 청년이 현장에 있던 미군용 캔 4개를 훔쳐 자기 가족 등과 나눠 먹은 뒤 1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중태에 빠졌다. 중독자가 속출하자 누군가 캔을 들고 영어를 아는 사람에게 달려갔다. 캔에 쓰여 있는 영문이 '쥐약'임을 뒤늦게 알았다. 이들이 국방색 '미제 깡통'의 내용물을 확인도 하지 않고 덜컥 먹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군용 'C레이션'인 줄로 알았던 것이다.

통닭구이 집들이 다른 이름 다 놔두고 '영양센터'라고 간판을 올리던 '영양 결핍'의 시대였다. C레이션의 고깃덩이는 신기하고 놀라운 미국의 맛이었다. 군용 식량이지만 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 중이던 1964~1973년엔 시중에 무척 많이 풀렸다. 이걸 매일 먹어야 했던 국군들에게 C레이션이란 김치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들 만큼 느글느글한 깡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요청으로 1968년부터 김치 통조림 등을 파월 한국군 식단에 추가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C레이션은 고기를 많이 못 먹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별미였다. 필자도 그 무렵 월남에서 귀국한 동네 아저씨가 가져 온 레이션 캔의 미트볼을 먹고 입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소설가 최일남은 6·25 때 C레이션이 '경이(驚異)'를 안겼다며 '그것 한 박스만 있으면 당장 그 처참한 지경을 이겨낼 것 같은 묘한 안도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C레이션은 혀로 만나는 미국이었다. 고기 스튜, 소시지, 크래커로부터 커피, 껌, 치즈 등이 골고루 포함된 구성부터 부자 나라임을 실감하게 했다. '미제는 똥도 좋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돌던 시절이었다. C레이션은 이중섭 그림에까지 자취를 남겼다. 그의 유명한 은박지 그림들은 모두 미군 C레이션 속 럭키 스트라이크 담뱃갑 은박지로만 그린 것이다(조선일보 2006년 3월 21일자).

이제 C레이션 시대는 가고 1981년부터는 플라스틱 팩에 포장된 MRE(Meal, Ready to Eat)가 미군에 보급되고 있다. 메뉴도 다양해져 이탈리아 음식인 라비올리(일종의 만두), 멕시코 음식인 비프 타코 등 24가지나 된다. 양식(洋食) 친화적인 젊은이들은 어렵사리 MRE를 구해 맛보기도 한다. 인터넷엔 MRE 시식 소감이 한 달 10여 건씩 올라온다. 고기에 주려서가 아니라 맛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먹어 보는 것이다. 어쨌든 미군 전투식량과 한국인의 인연은 70년째 끈질기게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