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성 재즈평론가

연초에 비틀스를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현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100m 넘게 줄 서 있어 깜짝 놀랐다. 그만큼 비틀스가 대단하다는 증거다. "제가 비틀스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라고 운을 뗐더니 장내에 웃음이 터졌고 이내 훈훈한 분위기가 됐다. 이렇게 팬이 많은 뮤지션을 이야기 소재로 삼게 되면 바짝 긴장하게 된다. 세상에는 비틀스 도사가 많기 때문이다. 그날도 한국비틀스팬클럽에서 어깨동무하고 몰려와 있었다.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연구하고 또 공부해서 비틀스 멤버들의 이웃집 강아지 이름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다.

한번은 내가 쓰던 인터넷 연재 칼럼에서 한바탕 댓글 논쟁이 벌어졌다. 만화와 글을 섞어 원고를 보내던 중이었는데 존 레넌이 권총에 저격당하는 컷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총을 앞에서 맞은 게 아니라 뒤에서 맞았다, 뒤로 도는 순간 옆구리에 맞았다, 다리에도 맞았다 등등으로 이어졌다. 인기 록 밴드 너바나와 건스 앤드 로지스 사이에 벌어진 다툼을 묘사한 만화에도 꼬집는 댓글이 등장했다. 건스 앤드 로지스의 보컬이 전기톱을 들고 쫓아가는 그림을 그렸더니 "톱을 든 적이 없는데 작가가 잘못된 정보를 설파한다"며 분노한다. 사실 여부를 따지자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고우영 삼국지에서 장비가 만년필로 편지를 쓰고 조자룡이 단칼에 수십명 목을 날리는 장면을 본다면 책을 던져버리지나 않을까? 존 레넌이 총에 맞은 게 중요하지 어느 부위에 맞았느냐로 논쟁을 벌일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음악팬들의 이런 지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무시된 요구에 대한 건설적인 불만들이다. 다만 기왕이면 마니아적인 관점을 갖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오타쿠와 마니아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마니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폭 넓게 이해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되는 데 비해 오타쿠는 한 가지에 집착하며 시야를 좁힌다. 나 역시 재즈를 전문 분야로 하고는 있지만 록이든 팝이든 마니아라는 소리를 들을 때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