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흉년으로 쌀 650만석이 모자라게 되자, 박정희 정부는 대대적인 '미곡(米穀) 소비 절약' 운동에 들어갔다. 쌀소주와 쌀과자, 쌀떡 제조가 금지됐고, 설렁탕 등 국밥에는 3할 이상 국수를 섞어야 했다. 1969년부터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 일명 '무미일(無米日)'로 정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쌀로 만든 음식을 팔 수 없었다. 이처럼 관(官) 주도의 혼분식(混粉飾) 장려 운동은 반(半)강제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1970년대 중·고교를 다녔던 식품영양학자 정혜경(58·사진) 호서대 교수도 당시 혼분식 장려 운동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도시락에 싸오는 밥의 30% 이상은 무조건 잡곡이어야 했다. 이 때문에 도시락을 쌀 때마다 밑바닥에 쌀밥을 깔고 맨 위에만 보리밥을 살짝 까는 '편법'이 속출했다. 그마저 선생님이 숟가락으로 도시락을 뒤집어 검사하면 소용이 없었다. "보리밥을 섞어야 한다는 규제가 꽤나 엄격했죠. 먹을 게 부족하니 결국 정부가 밥상머리까지 참견하고 나선 거예요." 1960~1970년대의 혼분식 장려 운동은 한국인의 입맛을 바꿔놓았다. 빵과 면류(麵類)의 소비가 급증하면서 식생활이 급속도로 서구화한 것이다. 정 교수는 "'서양식 식단은 세련되고 우수한 반면, 전통 식단은 촌스럽고 뒤떨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이즈음"이라며 "이러한 식습관의 변화는 지난 시대의 압축적인 경제성장과도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영양실조와 저체중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어느새 심혈관계 질환과 당뇨, 비만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정 교수는 "서양식 식단이 우월하다는 건 영양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라고 했다.

한국인의 식단은 서구화했지만, 반대로 서구에서 한식(韓食)은 '대안 음식'으로 조명받고 있다. 올해 밀라노 엑스포(EXPO)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던 정 교수는 "나물과 김치, 된장·고추장 위주의 전통 한식은 저칼로리 음식인 데다 대장암 등 소화기 관련 질환을 막아주는 유산균과 섬유소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건강 친화적인 식단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