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000억원에 이르는 기금을 세계 과학자와 탐험가들에게 지원해 '모험과 도전의 상징'으로 통하는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이 올 10월 우리나라 서울에 아시아지역 총괄재단을 설립한다. 아시아 총괄재단 운영을 위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벤처 1세대 기업인 5명이 합쳐서 매년 10억원씩, 향후 5년간 총 5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재단 후원자들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은 7일 "아시아인들에 의해 이뤄지는 과학과 탐험을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 재단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를 한국에 설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총괄 대표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미디어랩 연구원 출신인 이재철씨가 임명됐다. 이씨는 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윗줄 왼쪽부터)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아랫줄 왼쪽부터)김정주 NXC 대표,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재철 아시아재단 총괄대표.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은 당초에는 서울이 아닌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을 후보지로 검토해왔다. 하지만 김범수 의장 등이 지난해 5월 공동 출자해 설립한 벤처기부펀드 'C프로그램'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서울에 재단을 설립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C프로그램 이사를 맡고 있는 벤처기업인 5명은 자신들이 번 돈을 수익 창출이 아닌 사회공헌에 사용하자는 뜻에서 펀드를 만들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적절한 지원처를 찾고, 지원금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펀드를 운영한다. 지금까지 놀이터와 미술관을 짓거나 리모델링해 낙후된 지역에 기부하는데 주력해왔다. C프로그램 엄윤미 이사장은 "놀이, 교육, 기회라는 C프로그램의 세 가지 목표 중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기회'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이사들 모두 흔쾌히 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은 1888년 지리학 지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설립됐다. 가난한 과학자와 탐험가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이 이룬 성과를 잡지에 소개했다. 지금까지 127년 동안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의 돈으로 진행된 과학연구와 탐험은 1만1000건에 이른다. 1909년 로버트 피어리의 인류 최초 북극점 정복, 1915년 미국 고고학자 하이람 빙엄의 페루 마추픽추 발굴, 1985년 심해에 가라앉은 타이태닉호 발견 등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수십년에 걸쳐 진행된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등 여성 과학자 3인의 영장류 연구도 내셔널지오그래픽 재단의 든든한 후원 덕분에 가능했다. 현재도 칭기즈칸 무덤 발굴, 바이킹 해적선 인양 등 전 세계에서 수백건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는 C프로그램의 기부금과 재단 본부의 기금으로 매년 20~30명의 아시아 연구자와 탐험자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최소 3만달러(약 3400만원)가 지원된다. 과학, 탐험, 보존 등 3가지 분야로 나눠 지원 신청을 받는다. 이재철 대표는 "아시아 각국 전문가로 '과학탐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 돈이 되진 않지만 인류의 지식 확산을 위해 꼭 해야 할 연구,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모험에 지원할 계획"이라며 "구체적 계획만 있다면 보물선 탐사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아시아는 이와 별개로 18~25세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2000~5000달러(약 225만~560만원)씩 지원하는 '청년 탐험가 연구지원금'도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 지원은 7월 24일까지 신청을 받은 뒤, 10월 말 선정자를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