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은 1990년 통일 전부터 최소 20여년간 적극적인 교류·협력이 이뤄졌다. '동독 주민을 자본주의 체제와 문화에 적응토록 해,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일으키자'는 분명한 지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후 서독 주정부와 지자체, 교회·복지단체 등 민간이 나서 추진한 사회문화 교류는 연 600여건이었다. 자매도시 결연이 73건 성사돼 문화·체육 교류 행사가 이어졌다. 이 중 16개 도시는 지방신문을 상호 교환할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양측 교사·역사가·언어학자·환경전문가·의사·노조 등 전문 분야 협력도 이뤄졌다.

서독이 특히 관심을 둔 것은 청소년 교류였다. 동독 청소년의 서독 연수·관광 등을 지원하는 데는 서독 보수층의 거부감이 덜한 데다,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통일 정책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젊은 시절 이런 교류를 통해 서독 문화에 대한 동경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동서 간 작은 교류들이 통일의 촉매제가 됐고, 이후 행정·주민 통합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통일을 추진 중인 중국과 대만도 정치·군사 대립 속에서도 경제·사회 협력은 꾸준히 늘려왔다. 1995~2012년 사이 대만해협 미사일 위기 등에도 학술교류 894건, 문화협력 692건의 사업이 진행됐고, 2006년 이래 양안(兩岸)경제무역문화포럼은 한 해도 빠짐없이 개최되고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선 정치는 접어두더라도 상호 이익이 되는 부분부터 접근해야 한다"며 "남북의 철저한 '정경(政經)분리·민관(民官)분리' 선언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남북 관계에선 북한이 매번 정치적 이유로 민간의 교류까지 차단하고 협박하는 행태가 반복돼왔다"며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기업인이나 시민단체(NGO) 등의 교류는 통 크게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경제 발전과 체제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