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양반인데 어찌 이리 우리를 생각해줬는지…."

2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서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레인 에번스(Evans·사진) 전 미국 하원 의원을 추모하는 출판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출판 기념식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강일출(87)씨는 "병으로 온몸이 굳어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었다. 내가 말재간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말밖에…"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에번스 전 의원은 1983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일리노이주 연방 하원 의원을 지냈다. 그런 그는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사이에서 '파란 눈의 후원자'로 꼽혀 왔다. 1999년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를 제기하고 위안부 문제를 미국 사회에 알려 왔다. 그는 파킨슨병으로 정계를 은퇴하기 전까지 두 차례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이날 출판 기념식은 에번스 전 의원의 삶을 담은 '그대의 목소리가 되어'란 제목의 평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31세에 미 연방 하원 의원이 돼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하고 베트남전 고엽제 문제 등 약자를 위한 법안 발의에 애썼던 그의 활동상이 담겼다.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서옥자 고문이 썼다.

2일 경기 광주‘나눔의 집’에서 열린‘고(故) 레인 에번스 전 미 하원의원 추모 출판 기념식’에서 서옥자(오른쪽)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고문이 발언하고 있다.

에번스 전 의원은 일본의 끈질긴 로비에도 2001~2006년 세 차례나 일본의 사죄 촉구 요구 등이 담긴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은 2006년 9월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상정해 가결됐지만 본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1년 뒤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마이크 혼다 미 민주당 의원은 "결의안은 내 스승이자 동료인 에번스 전 의원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었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태식(70) 전 주미 대사는 "에번스 의원은 생전에 만났을 때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하는 것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 것일 뿐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