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도 취업이 쉽지 않은 이 시대에 오랫동안 주부로 살다가 다시 직업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뒤늦게 기술을 배우거나 주부로서의 경험을 살려 직업을 찾는 경력단절여성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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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100만 시대에 당차게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경단녀(경력단절여성)들이 있다.

대부분 결혼한 경단녀들은 출산이나 육아의 벽에 부딪힐 때 직장을 그만둬야했다. 1983년 ‘신(神)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기업에 다녔던 김광은(62)씨도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다. 입사 당시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고 계약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후회 없는 30여년을 보냈지만, 가슴 한편은 허전했다”고 했다. 김씨는 뒤늦게 자신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50세에 한 초등학교 방과 후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로 10년을 일을 했다. 하지만 60세에 정년을 맞이한 김씨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기술만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겠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서울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미용 기술 수업을 들으면서 일곱 번의 도전 끝에 자격증을 따냈다.

지난 23일 서울 논현2동 문화센터에서 두미소 공동 대표인 김광은 씨와 김정순 씨가 손님의 머리를 해주고 있다.

최근 김씨는 함께 기술을 배우던 친구와 서울 한 아파트 지하상가에 작은 미용실을 열었다. 남들은 노후 자금도 있고, 과거 화려한 경력이 있는데 왜 미용실을 하느냐며 이해가 안 간다고 하지만, 김씨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기초수급자들이나 독거노인들에겐 반값만 받는다. 김씨는 “돈 보다 일이 즐겁고 남들한테 봉사 할 수 있어서 좋다”며 “60이 넘는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했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논현 2동 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는 빵 만들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업을 듣는 여성들은 눈에 불을 켜고밀가루 반죽을 폈고, 반죽 모양을 하나하나 잡아나갔다. 이들은 스스로 만든 빵을 신기한 눈으로 보며, 서로 맛을 평가를 해주고 격려하고 있었다. 수강생 권숙향(49·주부)씨는 “늦둥이를 낳아 나를 위해 시간을 쓸 겨를이 없었다”며 “지금은 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제빵 교육을 가르치고 싶다는 새로운 포부가 생겼다”고 했다.

경단녀들은 새로 기술을 배우는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출산이나 육아 등 주부로서 경험을 사회에 살릴 수 있는 직업도 있다. 안은정(42)씨는 1년 전부터 가연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 재단의 고객지원 팀장으로 4년간 일한 경력이 있었지만, 결혼으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주부로 생활하던 그가 찾은 직업은 남녀의 인연을 연결해주는 커플매니저. 그는 혼기를 맞아 육아나 출산 문제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주부 입장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한다. 상담하러 온 여성이 맞벌이 부부 생활에 대해 물으면, 자신이 맞벌이했던 경험을 떠올려 경험담을 전해주는 식이다.

고객의 결혼 상담을 해주고 있는 안은정(42.커플 매니저) 씨.

안씨는 “일을 다시 일을 시작하자 저 만큼이나 반기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바로 그의 두 딸이다. 그는 “일을 다시 하니 제 자신을 지속적으로 가꾸게 된다”며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 커플매니저야 예쁘지?’라고 자랑할 때면 다시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뿌듯하다”고 했다.

이 회사 채용담당자 김민서씨는 “우리 회사 직원들 중 기혼 여성 비율이 높다”며 “가정을 돌보면서 쌓은 경험을 잘 살린다면 취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