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의 애증(愛憎)은 10여년을 이어 왔다. 2005년 1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이던 박 대통령은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던 유 원내대표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삼고초려'를 하면서 그를 기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비서실장' 타이틀은 현재의 유 원내대표를 만든 정치적 발판이었다. 2005년 10월 비례대표를 내려놓고 대구 동을 보궐선거를 통해 지역구 의원이 되는 데는 박 대통령의 도움이 있었다. 친박(親朴) 핵심으로 자리 잡은 유 원내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박 대통령 캠프의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았다. 유 원내대표는 친박 핵심으로서 정치적 중량감도 높여갔다. 2011년 7월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지원을 업고 홍준표 의원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최고위원이 됐다.

10년前 사이좋던 두 사람 - 2005년 10월 27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대구 동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유승민 당선자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당시 유 당선자는 박 대표 비서실장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2011년 11월 당시 친박계는 대선이 1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이 위기에 처했다"며 최고위원직을 던져 '홍준표 체제'를 붕괴시켰다. 그 결과 예상보다 빨리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섰다.

이후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의 '소신 발언'을 '공개 비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자 "철학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박 위원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의 인터뷰도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았지만 며칠 만에 사퇴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파문(破門)'한 것은 아니었다.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 심기를 정면으로 거스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원내대표가 지난 2월 원내대표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청와대 내에선 '한번 믿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는 깨졌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고, 교섭단체 연설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더 이상 지킬 수 없다"고 말해 야당의 박수를 받았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위헌 논란을 빚은 국회법 개정안을 청와대의 반대 속에서 통과시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한 친박계 중진은 "두 사람이 정면 대결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