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익 논설위원

이른바 '신경숙 사태'를 더 키운 것은 문학권력 창비였다. 신경숙 표절이 불거졌을 때 창비가 신경숙을 감싸기 위해 내놓은 논리와 어휘를 두고 '우주적 궤변'이란 말이 나왔다. 창비는 독자를 자기네 잣대에 따라 움직이는 생각 없는 존재로 보는 듯했다.

15년 전에도 '문화권력' 논란의 광풍이 몰아친 일이 있었다. 문학권력, 언론권력, 종교권력…. 각 분야에서 힘이 있는 곳을 향한 손가락질이 난무했다. 문학과지성사를 겨냥했던 불길이 창비로 옮겨가려 할 즈음 창비가 내놓은 입장은 이랬다. "이번 논쟁이 창비도 문학권력인가를 곰곰 생각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독자들이 위임한 창비의 권력을 앞으로 더 공정하고 정당하게 행사해 나가겠습니다." 그랬던 창비가 이번에 대표적 문학권력으로 공격받는 처지가 됐다.

문화에 '권력'이란 생소한 말을 처음 갖다 붙인 것은 1994년 일간지 문화부 기자였던 손수호였다. 이문열과 유홍준을 지칭하면서였다. 이문열이 한 소설가가 쓴 작품에 대해 호평했더니 대번 베스트셀러가 됐다. 유홍준이 어떤 문화유산에 대해 답사기를 쓰면 그곳에 순례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문화권력은 '강력한 영향력'을 뜻하는 괜찮은 수사(修辭)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 문화권력 논쟁은 달랐다. 문화권력에 '기득권' '파벌주의' '유착관계' 같은 말들이 따라다녔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분야에서 힘을 갖게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조건과 과정이 필요하다. 권력 행사에는 음지도 있고 양지도 있다. 그런데도 일단 문화권력으로 찍히면 악(惡)과 동일시됐고 바로 청산 대상에 올랐다. 40년 만에 처음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문화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 2차 문학권력 논쟁은 15년 전 논쟁의 연장선 위에 있다. 배역이 겹치고 밑에 깔려 있는 '운동적 성격'이 비슷하다.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를 빼닮은 문장을 담은 소설을 발표한 것은 20년 전이었다. 이 소설은 이미 오래전 표절의 낙인이 찍혔다. 이걸 다시 끄집어내 문제 삼은 데서 표절을 실마리 삼아 문화권력론을 재점화하려는 뜻을 읽는다. 한 문학평론가는 "자본과 비평을 가진 거대 출판사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특정 작가를 무한 애정으로 돌보는 조직 문화에서 표절을 표절이라 말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15년 전에도 "평론과 출판상업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번 논란을 통해 비평과 출판의 유착은 오히려 정교해졌고 문학권력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게 드러났다. 권력이 스스로 힘을 내려놓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작가가 받아야 할 정당한 평가를 문단의 잘못된 구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능력 이상 과대평가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화권력론이 안고 있는 맹점은 "나는 옳은데 너 때문에 안 된다"는 기계적 이분법이다. 여기서는 권력을 부정하는 것 역시 권력적 행동이라는 사실이 간과된다. 나를 포함한 문단 전체의 내적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는 운동은 한계가 있다.

문학권력이 사라지면 '집 나간 한국문학'이 돌아올 수 있을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은 시대와 인간을 읽는 작가들의 눈이 깊어져야 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권력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