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현대미술센터인 포르티쿠스(Portikus)에선 한국 작가 임민욱(47)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개막 때 선보였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를 찍은 영상이 전시장에 설치됐다. 현대미술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작가 차재민(30)은 영상 작품 '독학자'와 '히스테릭스'로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포럼 익스팬디드' 부문에 공식 초대됐다. 북한의 미술 창작 단체를 다룬 작가 최원준(36)의 영상작 '만수대 마스터클래스'도 같은 기간 뉴욕'2015 뉴뮤지엄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았다.

국내 3040(30~40대) 영상 작가들의 활약이 뜨겁다. 올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은 작가 임흥순(46)·김아영(36)·남화연(36), 한국관 작가 문경원(46)·전준호(46) 모두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다. 영상 작업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한국 젊은 영상 작가들의 기세는 그중에서도 무서울 정도다.

복잡한 역사, 영상예술 연료 되다

최근 미디어아트의 큰 추세는 예술성을 가미한 사회성 짙은 다큐멘터리성 영화다. 전쟁, 분단, 산업화, 중동근로자 등 복잡한 근현대사를 가진 한국의 영상 작가들로선 그만큼 소재 거리가 많다. 임민욱 작가는 "한국은 급변하는 사회라 특정 사안에 대한 쏠림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겪고 있다"며 "영상은 작가들이 이런 사회 현상을 담을 수 있는 좋은 성찰 도구"라고 했다. 그는 "영상 작품은 상업성을 띤 장르가 아니다"며 "국제 미술계에선 한국의 영상 작가들이 물건처럼 작품을 사고파는 미술 시장과는 관계없이 비평적 시선을 유지해 가는 상황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했다.

서사와 영상미, 기술로 무장한 한국 영상 작가의 활약이 눈부시다. 위는 암각화와 산업화를 독특하게 이은 박경근의 영상작‘철의 꿈’, 아래 왼쪽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임민욱의 개인전‘Untitled Paradox’, 손가락을 누르면 색깔이 번지는 미디어작가‘에브리웨어’의 작품.

올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의 '위로공단', 한국의 산업화를 암각화와 결합해 지난해 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초대된 박경근(37)의 작품 '철의 꿈' 등이 대표작이다. 배명지 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는 "일본은 패전 이후 역사적인 소재를 예술에 쓰는 걸 금기시하다 보니 고이즈미 메이로 같은 작가를 빼곤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영상 작가가 거의 없고, 중국 영상 작품은 미학적 완성도가 낮은 편"이라고 했다.

서구와 출발선 비슷한 장르

예술에서 전통과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조각·회화 등 전통 예술 장르에서 뿌리 깊은 서양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영상 예술은 20세기 들어서 본격적으로 발달한 장르라 한국 작가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는 분야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볼 수 있는 고희동(1886~1965)부터 봐도 우리나라 서양 회화 전통은 1세기 정도"라며 "반면 영상기술은 우리가 오히려 앞선 데다 우리에겐 미디어아트의 원조인 '백남준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신수진 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은 "영상 작업은 표현 방법을 익히는 훈련 기간이 짧고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분야"라며 "이 부분에서 한국 작가들이 뛰어나다"고 했다.

'IT 강국', 예술을 뒷받침하다

영상 예술은 기술과 함께 꽃핀다. 모니터와 프로그램 등 IT 기술이 총집약된다. '디지털 강국'이 지닌 인프라가 분명 작가들에겐 유리하게 작용한다. 김아영 작가는 "한국은 인터넷이 빨라 바로바로 습작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파급 효과도 크다"고 했다.

삼성과 LG 등 디지털 산업을 이끄는 세계적 기업이 포진한 것도 힘이 된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과 협업해 신제품 모니터를 후원받기도 한 영상 작가 이이남(46)은 "미디어가 캔버스인 영상 작가에게 한국의 기술력은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