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 수도권고속철도 공사 현장. 총 길이 50.3㎞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선 세 번째로 긴 철도 터널인 수도권고속철도 율현터널 관통식이 열렸다. 서울 수서역과 평택 지제역을 연결하는 율현터널 전 구간을 3년 5개월만에 완전히 뚫은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율현터널 내부에서 개최한 이 행사에는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24일 열린 율현터널 관통식에서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과 공사 관계자들이 관통 기념 행사를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관통식은 최근 마지막으로 작업이 완료된 공구에서 열렸다. 그런데 그간 이 공구를 지켜온 일선 작업자들은 관통식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인부들은 전날 밤까지 행사장 주변을 청소하고 정리했지만, 정작 이 자리에 초대 받지 못했다. 인부 30여명은 이날 관통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숙소에서 TV로 유 장관 등 참석자들이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공사 현장 작업자 A씨는 “전날 밤 퇴근할 때 현장사무소에서 ‘장관님을 비롯해 높으신 분들이 오시니 내일 오전엔 출근하지 말고 현장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했다”면서 “길게는 2~3년 불철주야 일한 우리 작업자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현장인데, 오지 말라니 서러움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행사 하루 전날인 23일에도 혹시 터널에서 물이라도 떨어지지 않는지 몇 번이나 현장을 점검한 뒤 퇴근했다고 한다.

또 다른 40대 작업자는 “20년 넘게 공사판을 돌아다녔지만, 이렇게 불청객 취급 받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면서 “공사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이런 행사에 가보는 게 ‘마지막 자존심’인데, 그마저 뺏어가버렸다”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터널을 직접 뚫은 우리가 주인공이고, 장관님은 지나가는 손님인데 너무 속상했다”고도 했다.

지난 24일 열린 율현터널 관통식.

이에 대해 현장사무소 관계자는 “관통식이나 준공식 행사 때는 현장 작업자들이 참석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면서 “이번엔 관통식 행사로 인해 오전에 공사를 진행할 수 없으니 ‘당일 오전에 쉬고 오후에 나오라’는 취지로 말한 게 와전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사무소 측은 “현장에 분진(粉塵)도 많고 외부 인사가 많이 오가니 쉬라는 얘기였지, 강제로 현장에 나타나지 말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관통식 행사에 공사 책임자 등 건설사 간부 일부는 참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관통식을 주최한 국토교통부 측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터널 현장에서 열린 행사인 만큼 참석자 수를 제한할 필요는 있지만, 현장 작업자 중 일부만이라도 대표로 초청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협소한 지하터널 안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특수성 때문에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며 “이번 행사에도 일부 근로자들을 초청했으나 앞으로는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고속철도는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해 동탄역을 거쳐 평택에서 현재 운영 중인 KTX고속철도와 만나는 노선으로 3조 605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그 중 지하 50m 깊이로 뚫린 율현터널은 수도권고속철도 건설 구간의 82%를 차지하는 핵심 구간이다. 율현터널은 추가 공사를 거쳐 내년 7월쯤 개통이 예정돼 있다. 현재 건설 중인 철도 터널을 제외하고 운행 중인 터널만 비교하면 스위스 고트하르트 베이스터널(57㎞), 일본 세이칸터널(54㎞)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