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세대는 나이는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너무 정보가 많아서 각자 취향이 크게 다르니까 무슨무슨 세대라고 명명할 수 없다”고 말한 소설가 한은형.

신인 소설가 한은형(36)이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문학동네)를 냈다. 3년 전 단편 '꼽추 미카엘의 일광욕'으로 등단해 지금껏 발표한 단편 여덟 편을 묶었다. 고독과 권태에 시달리는 인간이 주로 등장하는 소설집이다. 선배 작가 정이현은 한은형 소설에 대해 "한은형의 인물은 권태롭고 황폐한 '속물들'이거나 절박하고 고독한 '꼽추들'이다"라며 "속물과 꼽추 사이를 오가는 인물 군상을, 작가는 가장 질서정연한 플롯 속에 우아하고 첨예한 방식으로 담아낸다"고 평했다.

한은형 소설은 현실을 낯설고 기발하고 도발적으로 바라본다. 의문의 익사체가 떠오르는 호수 근처의 별장에서 꼽추를 학대하는 파티가 열리거나, 작가 지망생이 변태 성욕자로부터 돈을 받고 그 행위를 묘사하는 엽기 소설도 있다. 사람이 개가 됐다는 변신 이야기, 연인형 로봇처럼 환상 문학의 속성도 지니고 있다.

한은형은 "외국이나 낯선 곳에 갔을 때 이방인이 된 느낌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런 느낌을 즐기다 보니 낯선 현실을 소설 속에서 빚어내는 걸 즐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인 작가의 소설에는 굳이 글쓰기를 선택한 욕망의 뿌리도 얼핏 드러난다. 그의 소설에서 글을 짓는 작가 혹은 집을 짓는 건축가가 사건을 묘사하는 화자(話者)로 자주 나온다. 현실과 문학에 대한 작가 한은형의 자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유로운 예술가가 아니다. 돈을 받고 글을 쓰거나 집을 짓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고용한 사람들의 변태적 욕망을 비판할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다. 타인을 향한 연민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형의 소설엔 앞뒤 구별이 없는 너구리상(像)이 등장한다. 삶이란 그처럼 복잡하기에 평범했던 어제도 오늘엔 낯설게 여겨진다. 한은형 소설은 그런 낯섦을 발칙한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한은형은 "리얼리스트이면서 정신적 향락주의자이기도 한 작가들을 좋아한다"라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보면 작가가 교양 시민이면서도 내면에 지닌 어둠과 변태적 충동과 싸우는데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돈키호테' '적과 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등 탐독한 책들이 숱하다.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볼테르의 문장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고 했다. 한은형은 "제 소설엔 무슨 '주의'이나 '주장'은 없고, 취향만 담겼을 뿐"이라며 "제가 좋아하는 국내외 선배 작가들이 같은 세대 작가들보다 더 공감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학사(史)는 그처럼 시대를 초월해 속이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취향이 이어지는 역사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