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엽 소장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25일 워싱턴 DC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놀랄 만큼 성장했고, 걸맞은 외교적 역할을 해야 한다"며 "동맹인 미국이 한국에 뭔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이제 포트폴리오(자산 배분)를 잘해서 국제사회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일 간의 갈등과 관련해서는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지도자는 여론을 반영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여론을 만들고 이끌어가야 하는데, 부족하다"며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라도 일본과 잘 지내는 것이 한국의 이익,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위협이 점점 커지면서 예측 불가능한 분단된 한반도보다 한국 주도로 통일된 한반도가 더 안정적일 수 있고,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중국이 갖도록 한국이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그의 저서 '대외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를 번역한 우정엽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사무소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

―최근 저서에서 부족한 재원 때문에 미국의 대외정책이 지향할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산 자동 삭감 정책 때문에 한국에 미국이 더 많은 부담을 지우려는 것 아닌가.

"동맹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2차대전 이후 유럽에 대해서도 좀 더 하라는 요구를 계속 해왔다. 상대국이 부유해지고, 성공하면 부담을 더 지라고 한다. 예산 자동 삭감 제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 그만큼 성장하고 성공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런 면에서는 완벽한 본보기다. 미국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국이 지역 방위나 한반도 안정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하게 된다."

―그래도 한국은 아직 강대국이 아닌 미들 파워 정도인데.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보자. 지금도 세계 10위권에 든다. 주요 국가로서 역할을 할 때다. 한국을 미디엄파워 내지 미디엄플러스 국가라고 부를지 몰라도 글로벌한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의 지도력을 역내(域內), 전 세계로 확대해야 한다. 이런 요구는 성공했다는 신호다."

―한국은 북한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 복지에 대한 욕구까지 커지면서 재원 배분 논쟁이 치열하다. 이런 제약 속에서 글로벌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른 많은 나라처럼 자원 분배(포트폴리오)를 잘해야만 한다. 안보나 외교는 국내 문제가 잘 돼야 튼튼해진다. 경제적인 성공, 교육 분야에서의 성취가 중요하다. 북한 위협은 특수한 경우다. 일정 부분의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만큼 비용이 든다. 통일 과정은 그러나 기회가 될 수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한국은 지역과 세계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 정상이 지도자답게 여론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6개월 전 월스트리트저널에 북한의 위협과 통일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썼다. 당시 평가가 변했나.

"바뀌지 않았다.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북한 정권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역내, 세계적 위협으로 자랐다. 문제는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거다. 다음 미국 대통령은 정보 당국의 수장으로부터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얹어 미국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는 보고를 받고, 이런 전제 속에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할 수 있다. 5년 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조치를 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그만큼 급박하다."

―한·미 양국의 역할이 있을 텐데.

"한·미 양국은 긴밀하게 한반도에서 일어날 변화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북한에서 뭔가 일어날 수 있다. 북한은 늘 우리를 놀라게 할 여력이 있다. 일본·중국과의 논의도 필요하다. 중국도 잘 생각해야 한다. 지금 같은 현상유지가 과연 그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할까. 그렇지 않다. 중국의 지도자가 긴급함을 느끼고 변화를 모색해야겠다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낙관적인 일도 있다. 한국에서 통일에 대한 인식이 변한 거다. 단순히 비용 문제만 고려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도 한국과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지만, 북한과는 뭔가 잘 안 되고 불편해한다. 새로운 사고들이 생겨나는 거다."

―한·중 관계를 두고, 일부 미국 전문가는 한국이 너무 가까워졌다고 우려한다. 미국과의 안보동맹도 중요한데, 한국의 전략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중국이 한국을 편안하게 느끼면 좋은 일이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전략적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깝다고 해서 미국과의 독특한 동맹 관계와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중국에 너무 의존적이 돼서는 안 된다. 한국과의 관계를 통해 중국이 좀 더 개방되고, 한반도 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역할을 요구한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분석이 있는데.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의 생각은 틀렸다. 한국은 실질적인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원하지 않으면 북한이 한국을 위협하지 못하게 확실하게 만들었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아직 충분하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동맹으로서 지역 안보를 함께 고려하자는 뜻이다. 한국의 이해가 한반도에만 국한되는 시기는 지났다. 광의적 의미에서 한국도 이해관계가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훨씬 더 강조한다. 한·일 관계 갈등 때문에 한쪽으로 쏠리는 듯한데, 옳은 행동인가.

"일본은 지난 60~70년간 동북아에서 미국이 생각하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제2의 경제 대국이었고, 자위대 같은 굳건한 힘이 있다.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를 포함한 광범한 지역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당연한 생각이다. 한국도 이제는 글로벌한 주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놓고 한·일 양국이 경쟁할 이유는 없다. 양국 모두 중요한 동맹이고, 한·일 간의 좋은 관계도 필요하다. 역사 이슈를 가지고 갈등만 하면 누구도 좋을 게 없다."

―하지만 현실이 쉽지 않다. 지도자들은 여론 눈치만 보고, 이웃과의 적절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양국 관계에 긍정적 흐름이 있다. 좋아질 거다. 그런데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한다. 지도자는 여론을 반영만 하는 게 아니라 여론을 형성하고 이끌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사적(私的)으로 (만나든 해서) 외교적 성과를 이뤄낼 수도 있다. 서로 처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다. 양국 정상들 간의 파트너십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간다."

[리처드 하스는…]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64)는 베테랑 외교관 출신으로 2003년부터 미국 외교협회(Council of Foreign Relations) 회장을 맡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책담당 팀장으로 일했고, 북아일랜드 평화조약 체결을 도와 2013년 티퍼래리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는 조지 부시(아버지)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고, 국가안전보장회의 근동 및 남아시아 사무국 선임국장으로 활동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저서가 12권이나 있다. 신작으로는 '대외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Foreign Policy Begins at Home)'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