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books 팀장

사과의 윤리를 생각하게 만든 일주일이었습니다.

스타 작가의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표절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식의 유체이탈식 해명 때문만은 아닙니다. 잘나가던 '청년 진보 논객' 두 명의 사과도 '어떤 사과는 듣는 사람을 더 화나게 한다'라는 격언의 해당 사례가 됐죠. 피해 당사자인 여자 친구들이 데이트 폭력을 폭로했을 때 한 사람은 '잘못은 했지만, 원인을 네가 제공했기 때문이다'는 식의 대응을, 또 한 명은 '천하의 진보 논객 ○○○의 몹쓸 짓에 대한 의혹에 관한 저 자신의 입장'이란 자해 공갈형 반박으로 공분(公憤)을 샀습니다.

이번 주 신간을 살피다가 '이제 진지함으로 말하라'(세종서적)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언론인 출신의 리 시걸이 쓴 이 책의 원제는 이렇습니다. 'Are You Serious?'

이 책 첫머리에는 풍자만화 하나가 실려 있습니다. 1904년 영국의 유머 작가인 맥스 비어봄이 당대의 시인이며 저명한 비평가인 매슈 아널드를 비꼬는 내용이죠. 만화에는 저명한 문학비평가 매슈가 조카딸과 함께 등장합니다. 벽난로에 기대서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꼬고 있는 매슈에게 소녀는 묻죠. "매슈 아저씨, 아저씨는 왜 한결같이 진지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건가요."

매슈는 '고상한 진지함'(High Seriousness)이라는 개념으로 이름난 비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성실함 없는 진지함이 어떤 참화를 빚는지에 대한 본보기이기도 하죠.

우리는 어떤 성실한 진지함을 촌스럽게 여기는 시대를 한동안 살아온 것 같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한 복수였을까요. 조건 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고개 숙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 명문대 동시 합격 허언(虛言) 소동 이후 "아픈 딸을 치료하며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한 아버지의 사과를 많은 사람이 지지한 것도 같은 까닭이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실천을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영어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Never ruin an apology with an excuse'

사과할 때는 구차한 꼬리표 달지 말고, 성실하고 진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