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0개의 치즈|빌렘 엘스호트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184쪽|1만800원

네덜란드 소설가 빌렘 엘스호트가 1930년대 중산층의 삶을 그린 소설이 뒤늦게 우리말로 번역됐다. 엘스호트는 벨기에에서 태어났지만 네덜란드에서 작가 생활을 펼쳤다. 그는 벨기에-플랑드르어권 국가문학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30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이번에 번역된 '9990개의 치즈'는 소시민의 일상을 통해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린 작품이다. 두껍지 않은 소품(小品)이지만 엘스호트의 대표작으로 꼽혀 왔다. 엘스호트의 문학은 '늘 아주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을 줄 아는 작가'란 평을 들었다. 그의 소설은 소시민의 소박한 꿈이 현실에서 왜곡되고 우스꽝스럽게 대접받는 상황을 풍자하면서 현대인의 다양한 초상을 그려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조선소의 보통 회사원 라르만스다. 그는 별로 내세울 것도 없이 그날그날 연명하는 처지다. 어느 날 그는 다른 사업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명품 치즈를 전국에 독점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 치즈가 일용품인 서구 사회에서 이보다 더 좋은 행운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형식부터 갖추려고 한다.

우선 넓은 책상과 최신형 타자기가 필요하다. 품격이 있는 상업용 편지지도 구해야 한다. 회사명을 근사하게 짓느라 시간을 보낸다. 치즈를 팔기 전에 이미 성공한 자신을 상상하면서 행복해한다. 그는 벌써 성공 신화를 썼다는 상상에 도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어설픈 그의 희극은 모든 소시민의 환상을 대변하기에 연민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