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다세대 주택에 사는 A(38)씨는 지난 10일 오전 1시쯤 누군가가 현관문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잠시 뒤 현관문 쪽에서 괴한이 문을 열고 들어오려 했다. 다행히 현관에 설치한 경보기가 울리면서 괴한은 도망쳤으나, 경찰이 이날 오후 8시쯤 인근 주택가를 배회하던 김모(47)씨를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했다.

A씨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괴한이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까지 들어온 게 더 불안했다. 서울 수서경찰서 개포파출소의 조사 결과 김씨가 A씨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전자식 잠금장치의 '비밀번호 초기화' 기능 때문이었다. A씨가 2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 보안업체는 1층 공동출입문과 현관문 두 곳의 잠금장치를 초기화하고 A씨에게 카드 열쇠 3개를 건넸다. A씨는 여태껏 카드열쇠만 써 왔고 비밀번호 기능이 있는 줄 몰랐다.

문제는 이 잠금장치 시스템을 초기화하면 비밀번호가 '1234'나 '0000'으로 바뀐다는 점을 김씨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강남 일대에서 전단 배포 일을 하던 김씨가 주택가 주민들이 대체로 초기화된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고 카드 열쇠만 주로 사용하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 일대 주택가를 돌며 잠금장치마다 '1234'를 누르고 다녔는데 뜻밖에 많은 집 잠금장치가 쉽게 열렸다고 한다.

개포파출소 직원들은 전단을 돌리는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보안업체 직원들을 통해 다세대 주택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수법을 여러 개 알아냈다. 다세대 주택이나 원룸에 사는 주민들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 보통 대문까지 나가서 받는 것이 귀찮아 배달원에게 대문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인근 주택에 자주 배달을 오는 직원들은 비밀번호를 외우기 귀찮아 잠금장치 귀퉁이나 옆 벽면에 비밀번호를 표시해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