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東仁)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나란히 신작 장편을 내놓았다. 1995년 수상 작가 정찬은 장편 '길, 저쪽'(창비)을 출간했고, 2011년 수상 작가 편혜영은 장편 '선(線)의 법칙'(문학동네)을 냈다.

정찬은 폭력의 구조와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작가로 이름이 높다. 그의 소설은 현실의 외양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사유(思惟)를 진지하게 그려내왔다. 신작 '길, 저쪽'의 주제도 폭력과 사랑이다. 이 소설은 1970~80년대를 되돌아보면서 폭력의 시대에 훼손된 사랑의 상처를 보듬는 소설이다. 유신(維新) 정권에서 5공화국에 이르는 동안 젊은 날을 보낸 세대의 후일담이기도 하다. 70년대 학생 운동에 투신했던 유신 세대가 어느덧 중년을 넘어선 시점에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간다. 관념 소설과 청춘 소설의 결합이다. '현실의 사랑이 아닌 꿈의 사랑이었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희끗해졌어도 여전히 나는 목마른 청년이었다. 목마른 청년에게 진실은 현실 속에 있지 않았다. 꿈속에 있었다.'

정찬, 편혜영.

이 소설은 '타인을 향한 사랑은 타인에게서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1970~80년대 독재 권력에 저항하다가 탄압을 받아 상처를 받은 세대가 공유하는 슬픔 때문에 그 세대 간에 이뤄지는 연대감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담았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슬픔에 감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소설 속의 한 인물은 중얼거린다. 등장 인물들에게 청년기는 '시인'처럼 꿈꾸고 말하는 삶을 뜻한다. 이 소설은 사진 작가와 건축가, 시인으로 구성된 등장 인물들을 통해 삶의 슬픔을 예술을 통해 성찰하고 '길, 이쪽'이 아닌 '길, 저쪽'을 발견해나간다.

편혜영은 평온한 현실 속에 숨은 악몽 같은 실체를 드러내는 작가로 이름이 높다. 이번에 낸 장편 '선의 법칙'은 전작들에 비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덜하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들이 버젓이 일상에서 당하는 폭력을 서서히 충격적으로 까발린다는 점에서 불안하고 흉흉한 오늘의 풍속도를 그려낸다. 이 소설에서 선(線)은 인간관계를 뜻한다. 개인은 점(點)으로 존재하지만, 선으로 얽혀 있게 된다. 그것은 가족이기도 하고 학연이기도 하다. 거기에도 악의와 폭력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갑을관계에 이르러 잔혹한 폭력의 세계는 더 거대해진다.

사생아가 본가(本家)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 친구를 속여 다단계 판매 조직에 떠넘기는 세태, 채무자를 압박해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채권자 조직과 그것을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사회가 나온다. 작가가 보기엔 왜곡된 인간관계다. 탐욕에 오염된 인간관계가 종횡으로 이어지면서 소설의 얼개도 짜여나간다.

편혜영은 이번 소설에서 건조한 문체로 일상의 관계망을 서서히 그려나간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인물들이 얼키고설키는 과정이다. 악의와 탐욕으로 왜곡된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고립될수록 안전하다는 역설도 나온다. '세상이 차차 단단한 벽이 되었다. 어둡고 암담하다는 게 아니었다. 벽으로 둘러싸여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편혜영의 소설 세계는 다음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삶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어느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