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조치가 해제되면 바로 근무에 복귀할 겁니다."

서울 건국대병원 4층의 메르스 격리 병상에 격리된 소아과 인턴 정모(31)씨는 18일 기자와의 대화에서 인턴 동기 걱정부터 했다. 격리되기 전까지 정씨는 인턴 동기생 한 명과 이틀에 한 번꼴로 소아과 밤샘 당직을 했다. 그런데 자신이 격리 조치 되는 바람에 "인턴 동기 혼자 소아과 당직 근무를 떠안고 있다"고 했다. 이 동기가 하루 4시간씩 메르스 진료소에서 근무하다 야간에 소아과 당직까지 도맡게 된 터라 빨리 격리가 풀리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18일 오후 서울 건국대병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격리 병동에서 전신 방호복을 입은 본지 김수경(오른쪽) 기자가 간호사로부터 병동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18일 오후 4시쯤 기자는 전신 방호복과 고글을 착용하고 건국대병원 4층 메르스 격리병실을 찾았다. 정씨 등 건국대병원 의료진과 직원 73명이 지난 5일 이후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76번 확진 환자가 이날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응급실에 근무하거나 들러 메르스 접촉자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격리병실 출입문에 난 손바닥만 한 유리창 속으로 들여다본 격리자들은 침대에 누워 책을 보거나 앉아서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대화를 나눈 이들은 격리 생활의 '무료함'과 함께 자기들 때문에 업무가 늘어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했다.

이 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이지환(28)씨는 지난 5일 응급실에서 76번 환자를 진찰했다가 그날 저녁부터 병원 4층 격리병실에 갇혔다. 침대 5개가 비치된 9평 남짓한 병실에서 76번 환자와 접촉했던 다른 레지던트 2명과 함께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이씨는 "평소 근무 때문에 잠이 부족해 격리 후 처음 이틀간은 20시간 정도 내리 잤다"면서도 "지금은 너무 갑갑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와 같이 10호실을 쓰는 레지던트 정은택(30)씨는 "의사 면허를 따고 아침밥을 처음 챙겨 먹은 것 같다"면서도 "격리 중에 밀린 수술들 때문에 격리 해제 뒤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갑갑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갑갑하지만 의사들이 격리 생활을 잘 마치면 국민도 다소 안심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병원에 격리된 23명 외에도 이 병원 의료진과 직원 50여명은 현재 자가 격리돼 있다. 수간호사 김모(46·여)씨도 지난 5일 응급실 데스크에서 당직을 서는 바람에 자가 격리됐다. 아직 별다른 증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아들이 담임 선생님한테 엄마가 건국대병원 수간호사라는 말을 했다가, 학교 측에서 등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 집에 있는다고 했다.

병동과 집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이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 가운데 메르스 감염 증상이 나타난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한다. 이들이 이틀 안에 메르스 증상을 보이지 않으면 오는 21일 오전을 기해 일제히 격리가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