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오브 미'(감독 마이클 호프먼)는 매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멜로영화다. 이 영화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멜로영화의 클리셰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들어가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정말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들어가 있다. 마이클 호프먼 감독은 한때는 관객을 강력하게 잡아 끌었지만, 너무 자주 반복돼 '사용'하기 민망해져 버린 그 모든 설정을 거리낌 없이 끌어와 영화를 만들었다. 요컨대 '베스트 오브 미'는 진부하고, 진부하고, 또 진부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극적 통속들을 모두 모아놓으니 예상 외의 힘이 생긴다. 주인공 남녀를 보면서 '그렇지, 그렇지. 이젠 이렇게 행동해야지'라고 말하면서 보는 작은 재미가 생긴달까.

아만다(미셸 모나한)와 도슨(제임스 머스든)은 고등학교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헤어지고,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을 아들과 딸처럼 대해준 고향 아저씨가 세상을 떠나고, 그는 이 두 사람에게 유언을 남긴다. 아만다와 도슨은 아저씨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의 집을 찾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20년 만에 재회한다.

영화는 과거 연인이었던 중년 남녀의 만남으로 시작해 그들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현재와 교차 편집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이다. 어색한 첫 만남 뒤에 그들은 반드시 과거를 소환하고, 그 과거 속에 빠져 잠시나마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하지만 기억은 결국 그들이 헤어졌던 그 순간까지 가닿고, 중년의 남녀는 다시 한 번 불화한다. 하지만 남자의 해명과 여자의 이해로 아만다와 도슨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여자는 가정이 있어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남자는 여자를 보내준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베스트 오브 미'에 얼마나 뻔한 설정들이 많은지 더 살펴보자. 고등학생 도슨은 물리학을 공부하며 밤마다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사는 남자다. 언제나 원피스를 입으며 긴 머리를 휘날리고 다니는 아만다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성숙한 도슨에 끌려 먼저 다가간다. 사실 남자도 여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남자는 가난하고, 여자는 부유하다. 여자의 아버지는 남자에게 돈을 주며 헤어지라고 한다. 남자는 외로울 때면 항상 가는 장소가 있고, 여자를 그리로 데리고 간다(거기서 그들은 별을 본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사랑을 나눈다. 남자는 윗옷을 벗고,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며 정원을 정리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샤워한다. 나중에는 이 강물 샤워에 여자도 합류한다. 도슨은 아만다에게 항상 꽃을 준다 등등. 중년의 도슨과 아만다를 보자. 아만다는 결혼했다. 아들과 남편이 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미모는 여전하다. 알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도슨은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젊다. 미혼이다. 아만다를 못잊어 다른 여자도 만나지 못했다. 근육은 여전하고, 머리도 빠지지 않았다. 아직도 별을 본다. 여전히 꽃을 건넬 줄 아는 매너를 가졌고, 가정이 있는 여자를 떠나보낼 줄 아는 배려심도 가졌다 등등. 이뿐만이 아니다. 언급하지 않은 클리셰들이 여전히 차고 넘친다.

상황이 이러하니 '베스트 오브 미'를 진부하다고 비판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물론 작품성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의 영화는 아니지만, 또 이런 이야기에 감동 받는 다소 수구(守舊)적인 감성의 관객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