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진 환자가 늘면서 '젊은 환자'도 속출하고 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 따르면 14일 현재 확진된 메르스 환자 145명 가운데 53명이 50세 미만의 젊은 환자다. 전체 환자 가운데 37%를 차지한다. 30·40대 환자가 45명이었고 20대 환자 7명, 10대 환자도 1명 있다.

물론 대다수 메르스 환자는 50대 이상이면서 당뇨, 신장병, 만성 폐질환 같은 병을 앓고 있거나 항암제·스테로이드 등 약물 치료를 받고 있어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이다. 특히 지병을 앓아온 고령 환자들은 면역이 약해 바이러스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고 면역력이 강하다고 반드시 메르스 무풍지대(無風地帶)에 있는 것은 아니다. 메르스 감염 직전까지 건강하게 일하던 사람이 며칠 만에 위중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슬로바키아 출장 한국인 고열로 격리 - 13일(현지 시각)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현지 의료진이 고열과 설사 등 메르스 유사 증세를 보인 한국인 남성을 구급차에 태워 격리 병동 이송 준비를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의사 박모(38)씨와 평택경찰서 이모(35) 경사가 그런 경우다. 박씨는 지난 4일 확진을 받고 8일부터 상태가 나빠져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11일부터는 에크모(ECMO·피를 몸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한 후 다시 몸속으로 넣어 주는 인공 폐)를 달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됐다. 양쪽 폐에 염증이 꽉 차서 자신의 폐로는 산소를 제대로 들이마실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10일 확진된 이 경사는 이틀 만인 12일부터 에크모를 달고 있다.

젊은 두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의 건강한 면역 시스템이 과잉 작동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생소한 바이러스에 대항하느라 면역 반응이 지나치게 활발해졌고, 그 결과로 생겨난 엄청난 염증이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폐까지 망가뜨린 것이다. 면역 반응으로 염증이 생기는 과정에 관여하는 물질이 '사이토카인'인데, 과도한 면역 활성 상태에선 사이토카인이 쏟아져 나와 심한 염증을 일으킨다. 극심한 염증은 폐를 망가뜨리고, 신장 등 다른 장기에도 손상을 입힌다. 쇼크가 오기도 한다.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불리는 증상인데, 젊고 건강한 면역 반응의 과잉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고윤석 교수는 "사스(SARS) 환자 중에도 사이토카인 폭풍이 일어나 사망한 젊은 환자들이 있었다"면서 "호주·뉴질랜드에서는 에크모를 쓰면서 사스의 치사율을 획기적으로 낮췄는데, 에크모로 산소를 공급해 환자가 스스로 치유력을 발휘할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대적인 염증으로 다른 장기까지 심하게 손상되지 않았다면 에크모 치료를 받으면서 고비를 넘기고 병세가 호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메르스 확진자가 늘면서 중증 메르스 환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치료할 인공호흡기와 에크모를 완비한 병원이 많지 않다"면서 "정부는 전국 16개 메르스 치료 병원들이 인공호흡기와 에크모를 제대로 갖췄는지 점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하면 우리 몸은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면역반응) 매개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엄청난 염증이 생겨 폐의 허파꽈리가 망가진다. 이 때문에 급성호흡부전이 일어나 인공호흡기나 에크모 치료가 필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