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네를 질투했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안네만 주목받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저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로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잔혹함과 전쟁의 비참함을 알렸던 안네의 의붓언니 에바 쉴로스(86·사진)가 일본 아사히신문 11일자 인터뷰에서 안네의 그늘에 가려진 채 살아야 했던 소녀 시절을 회고했다. 현재 영국 런던에 사는 그녀는 올해 종전(終戰) 70주년 관련 여러 행사와 강연에 참석하며 활발하게 반전(反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쉴로스씨는 1929년 오스트리아 빈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구두 공장을 운영하던 부모, 세 살 위 오빠와 단란하게 살았다. 하지만 10살 되던 1939년, 2차대전이 터지면서 가족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피난했다. 당시 이웃에 살던 동갑 소녀가 안네였다.

"안네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자존심 강하고 수다스러웠죠. 저와는 반대였어요." 그런데 소녀답잖게 어딘가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쉴로스씨는 말했다.

독일군이 네덜란드로 침공하자, 쉴로스씨 가족 역시 안네처럼 2년간 은신처에서 지냈다. 하지만 1944년 이웃의 밀고로 발각된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8개월의 지옥 같았던 수용소 생활은 소련군이 수용소를 폐쇄하면서 끝났지만, 다른 수용소에 갇혀 만날 수 없던 아버지와 오빠는 해방 직전 수용소에서 숨을 거뒀음을 알게 됐다.

살아남은 쉴로스씨의 어머니는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와 재혼했다. 오토는 안네 가족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다. 어린 딸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 때문인지, 그는 안네가 은신처에서 썼던 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분투했다.

"안네의 이야기는 제겐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았어요. 안네는 일기에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는다'라고 썼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는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이니까 할 수 있었던 거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안네는 1945년 수용소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독일군의 횡포, 수용자들끼리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짓밟는 행동을 보면서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고 했다. 살아남긴 했지만 상처받은 삶은 고달프고 버거웠다. 죽은 안네에게만 집착하는 의붓아버지에게 서운함도 느꼈다. 오토는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 "아버지는 '남을 미워하면 나도 비참해질 뿐'이란 말을 되풀이해서 들려 주셨어요. 그 말에 제 마음도 조금씩 온기를 찾기 시작했죠."

현재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하는 쉴로스씨는 독일의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할아버지 세대가 한 일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마세요. 다만 역사를 배우고, 잊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